완전한 순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도장이란 단어는 본래 도장수(道場樹)의 줄임말이다. 도장수는 키가 30미터 되는 거대한 활엽수인데 과거에는 보리수로 불렸다. 이 나무 밑에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불교가 널리 퍼지면서 도장은 개인이 심신을 단련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태권도도장, 합기도도장, 도장이라는 단어를 수 없이 들어왔지만 나무에서 기인한 단어인 줄은 몰랐었다. 나의 도장은 어디인가? 온 천지가 도장이다. 가정일 수도 있고 골프장일 수도 수영장일 수도 일터일 수도 있다. 언제쯤 깨달음이 올까? 궁극의 지점이 오긴 하는 걸까? 죽음 직전까지도 그 지점에 닿기 힘들 것이다. 전체적인 완전을 꿈꾸기보다는 부분이라도, 순간이라도 완전해보기를 바란다. 희망을 갖고 내일을 기다리지만 다가온 내일은 어제의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착해보면 생각과 다르기도 하고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완전한 순간을 맛보는 것이 현명하다.
‘싱어게인’이라는 노래 예능 프로가 있다. 대부분 무명의 가수들인데 작곡가 안신애가 만들고 소수빈이 부른 ‘머물러 주오’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 가사 중 한 대목이다.
‘머물러 주오. 머물러 주오. 한 순간이라도 완전할 수 있도록 오 오 그대여’
내 인생은 그대가 있어야 완전해지니 머물러 달라는 애절함이 담긴 노래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다. 나는 어떤 상태에서 완전함을 느낄까? 내 인생이 온통 장밋빛이면 좋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회색일때도 핑크빛일 때도 있다. 다양한 색깔로 물들어있다. 이렇듯 행복할 때도 다소 불행할때도 있다. 완전한 찰나는 있지 않을까?
행복이 충만해 더 바랄 것이 없는 순간만큼은 완전해질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아이의 웃음을 볼 때, 승진했을 때, 큰 평수로 이사 갔을 때, 힘든 산행을 마치고 정상에 다다랐을 때, 여행 가서 멋진 노을을 보았을 때, 아이의 삐뚤빼뚤 글씨로 쓰인 감사 카드를 받았을 때 등 수없이 많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이 순간들이 모여 고통스러운 인생을 버티는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더 거울을 보기 싫고 사진찍기가 싫다. 늙어가는 내 모습이 싫어서다. 나만 늙는 것도 아닌데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뭘까? 하루가 충만하고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비교와 불만’에서 온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남의 인생은 편집본이고 나의 인생은 원본’이라는 말을 들었다. 남들이 SNS에 올리는 사진은 최고로 멋있고 근사한 것들이다. 그들의 원본은 알 수 없다. 나도 잘 나온 사진, 여행가거나 멋진 카페에서 찍은 사진만 올린다. 그들이 나의 원본을 알 리 없다. 지인들에게 내 치부를 드러내기 싫으니 항상 잘 지낸다고만 얘기한다. 타인들이 나의 전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루 하루 살아가며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관심 있는 것에 열심을 보이며 연마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모임이라도 갔다 오면 나보다 잘난 사람만 부러워하며 상대적인 초라함에 기분이 씁쓸해질 때가 있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비교’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행복해지려면 비교를 하지 말아야 한다.
불만을 갖지 말아야 하는데 이 또한 어렵다. 아홉 가지가 만족스러워도 한 가지를 기어코 고쳐서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은 늘 불만인 상태이다. 열 가지 중에 두 세가지만 있어도 만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진 것의 차이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다.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전자에 속한다. 가진 것을 돌아보고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데 알면서도 잘 되지 않으니 더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완전하다는 것은 이상이며 추구하는 지점이고 있을 수 없는 허구의 세계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고 그려볼 때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 또한 10을 다 갖겠다고 덤빌 것이 아니라 10에 가깝도록 살아보겠다는 마음가짐을 추구한다. 여기서 10이란 재물을 의미하는 것도 명예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느끼는 충만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공예를 하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생각하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접시를 만들어보고 싶다든가 의자를 완성한다든가등의 계획이 있을 것이다. 완전한 목표로 향하는 마음, 그것을 만들어냈을 때의 가슴 벅참. 그것이 완전함 아닐까? 나는 노래 연습을 할 때 과정을 즐긴다. 어제보다 고음 소리가 더 잘 나올 때, 잘 되지 않던 부분이 유연하게 잘 표현될 때 완전함을 느낀다.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다. 지금이 인생의 화양연화요, 마지막 불꽃이니 완전한 순간이라도 만들어가며 살고 싶다. 필멸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으니 그거 해서 뭐하냐고 하면 우리네 인생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추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찰나의 기쁨, 그것이 전부다.
DJ겸 가수 김창완은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에서 말한다.
‘우선은 완벽에 대한 환상과 실제가 이렇게 차이가 크구나 하는 거예요. 오늘 또 재수떼기 하듯 동그라미를 그려 볼 거예요. 또 찌그러져 있겠지요. 저의 하루를 닮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망할 것도 없지요’
그는 거의 매일 동그라미를 그린다고 한다.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읽고 원고 뒷면에 그리는데 수없이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그리며 배우는 게 많다고 말한다. 그의 넋살 좋은 미소가 떠오른다. 가끔 사는 게 힘들 때는 왜 태어났고 삶의 의미는 무엇이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고민했다. 그래 봐야 얻을 수 있는 답은 없었고 나아진 것도 없었다.
차라리 ‘오늘 하루를 어떻게 의미 있게 살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이득이다. 오늘도 내 동그라미는 찌그러져 있다. 행복을 유예하지 않고 하루하루 완전한 순간을 만들며 중년 생활을 꾸려나가야겠다. 감히 완전을 꿈꾸며...
* 출처: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이다' (이기주, 황소북스,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