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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Sep 22. 2022

가을은

  홍천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달리면 지루하게 반복되는 풍경들이 차창을 쉴 새 없이 메운다. 가을걷이를 마친 지 얼마 안 된 들녘의 끄트머리에는 산들이 시름없이 늙어가는 듯하다. 군데군데 메마른 억새들이 한결같이 고개 숙이고 바람에 순종하고 있다.

어쩌다 바람의 방향을 거역해 꺾여 버린 또 다른 억새 가지가 세 난의 고통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 곁에 동물의 잔해처럼 풍화되어 가는 달맞이꽃의 실루엣이 서럽다.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아도 나는 이제 알 수 있다.     

이맘때쯤이면 저 꽃들의 씨방이 어떤 모습으로 열려 있는지를. 동그마니 서 있는 시골집 그 낡은 장지문처럼 이제는 품을 것이 없어 열어젖혀져 있으리라.


  지난가을 의기양양하리만치 파랗고 빨갛던 감나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앙상하다. 어미의 젖꼭지를 빨아대는 어린것의 볼우물처럼 감꼭지가 진저리 치게 박혀 있던 그 빨간 감들은 하나둘 떨어져 어디로 갔을까. 여름철의 작렬했던 태양 아래서도 구름만 유유히 흘려보내던 느티나무마저 꼭대기까지 벌거벗은 채 텅 빈 새 둥지만을 품어주고 있을 뿐. 불현듯 저 둥지 안이 궁금해진다. 알을 품던 어미 새의 노심초사, 영글지 않은 여린 몸에 유난히 노란 주둥이만 바삐 움직이는 새끼들의 입속으로 먹이를 물어다 나르던 어미 새의 눈빛은 오직 한 가지 생각만으로 반짝였다고 기억한다.  

   

  어느새 텅 비어 스산해 가고 있는 늦가을의 풍경은 거무스레한 부엽토의 빛깔과 메말라가는 모든 것들이 황량한 갈색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그 속에서 상록수들의 푸른빛은 언뜻언뜻 점묘를 이룰 뿐이다. 잘린 밑둥지로 논바닥에 박힌 사방 연속무늬의 질서가 차라리 외로워 보인다. 저 풍경 어디에도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다. 밭 귀퉁이 썩을 겨를도 없이 시든 배춧잎들이 마치 산짐승들을 위해 남겨 놓은 푸성귀를 덮어주고 있다.

먹이를 찾아 들판을 헤매는 짐승들의 습성을 위해 누군가가 배려해 놓은 듯싶다.

저 풍경 어디에도 찾기 힘든 온기가 그 돼지감자 아래에 스며 있을 것 같다. 아직도 그런 야생의 습성을 지닌 산 짐승이 남아있을까? 멧돼지가 떠올랐다.  

   

  추억, 그 추상적인 단어가 시든 가을걷이가 끝나 배춧잎들이 뒹구는 밭고랑 사이로 다가온다. 아버지는 내게 있어 배추밭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회상의 정점은 늘 텃밭 고랑 저편에 있었다.

왜 하필이면 텃밭인지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추억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설명하기 모호할 뿐이다. 그렇다고 농사를 지어먹던 우리네도 아니건만 아버지와 연관된 텃밭의 기억이라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린 시절 앞마당에 심어 놓았던 배추, 무들 밖에 없다.

김장철이면 아버지가 노란 배추속대 한가운데를 부러뜨리던 아련한 기억~

땅속까지 얼어붙으면 배추속대도 얼어붙는지 아니면 배추속대가 얼어붙을 만큼 추워지면 땅속까지 얼어붙는지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아버지는 겨울이 시작할 무렵 얼기 전 땅속에 묻혀 버렸다. 그 무렵에 텃밭은 항상 시든 배춧잎들이 널브러져 있어 메말라가는 모든 것들의 겨울 풍경과 서러우리만치 잘 어울렸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내게 가을걷이가 오래전에 끝난 한겨울의 배추밭으로 남아있다.


  한때 물기 오르던 그 연둣빛의 시간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묻기조차 황량한 저 겨울 저 시든 배추밭 사이로 말이다. 나는 잘 운다. 더욱이 메마른 겨울에는 눈물이 더 많아진다. 전신주 끝을 스치는 겨울밤의 바람 소리에도 나는 속울음이나마 흘려야 한다. 하지만 나도 내 눈물을 전혀 예기치 못할 때가 많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 비탈리의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Tomaso Antonio Vitali 1663~1745)의 “샤콘느 G단조”를 들을 때도 울지 않다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들으면서 울 때도 있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엄마가 부르던 동백 아가씨를 참 좋아했다. 눈을 감으면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 있을까?

눈을 감을수록 눈물은 더 많이 흐른다. 흘러가야 할 시간을 막으면 그 시간의 강은 범람하고야 말리라. 어린 시절 노란 텃밭 조심스레 가로지르면 피어오르던 그 미세한 물방울의 입자도 어쩌면 이제는 견딜 수 없어 범람하는 눈물이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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