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은 계절의 문턱에서 우리를 잠시 멈춰 세운다. 여름의 뜨거움은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으나, 공기 속에는 이미 가을의 서늘한 결이 스며든다. 낮은 조금씩 짧아지고, 해 질 녘 빛은 유난히 길어져 하루의 끝을 더 깊게 바라보게 한다.
구월은 단순히 달력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시간의 흐름을 새삼 일깨우는 사색의 계절이다. 푸르던 잎들이 빛을 거두어들이고, 마침내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 우리는 생의 완성과 소멸을 함께 떠올린다. 삶은 붙잡을 수 없는 흐름 속에 있으나, 그 사라짐이야말로 또 다른 시작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가을은 조용히 가르쳐준다.
구월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너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비워낼 것인가.” 익어가는 곡식이 결국 내어줄 때 비로소 충만해지듯, 인간의 삶 또한 쥐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눌 때에 완성된다. 우리는 붙드는 순간보다 놓아주는 순간에 더 성숙해지고, 잊히는 것 속에서 영원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래서 구월은 하나의 계절을 넘어선 철학이 된다. 그것은 사라짐을 통해 삶이 완성되고, 시간이 우리를 통해 의미를 얻는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목소리다. 구월이 오면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구월은 그렇게 우리의 내면에 조용히 스며들어, 삶을 성찰하게 하는 깊은 질문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조금 더 겸허해지고, 조금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