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 박용운
아침과 저녁의 경계가
희미해질 무렵,
나는 커피를 내린다
물이 끓는 소리 속에
하루의 말들이 하나둘 잠기고
남은 것은
당신을 부르지 못한 침묵뿐
컵에 떨어지는 갈색의 시간,
그것은 늘
기다림의 색을 닮아 있다
첫 모금은 쓰다
언제나 그렇듯
삶의 시작은
기대보다 쓴 법이라며
나는 혼잣말을 한다
그 쓴맛 속에서
당신의 웃음이 떠오르고
우리가 나누지 못한 말들이
설탕처럼 바닥에 가라앉는다
젓지 않아도
가라앉을 것은
결국 가라앉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창가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나는 시간을 세지 않는다
그 대신
당신이 떠난 뒤
얼마나 많은 계절이
내 안을 지나갔는지를
가만히 더듬는다
봄에는
커피 위로 햇빛이 내려앉아
괜찮은 척 웃을 수 있었고
여름에는
얼음이 녹는 속도만큼
그리움도
조금은 희석되는 듯했으며
가을에는
낙엽처럼
당신의 이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에 떨어졌고
겨울에는
식어버린 잔을 붙잡고
따뜻했던 순간들만
되뇌었다
그리움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임을
커피를 마시며 배운다
너무 뜨거우면
마실 수 없고
너무 식으면
맛을 잃듯
그리움도
너무 가까우면 아프고
너무 멀어지면
공허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딱 마실 수 있을 만큼의
당신을 떠올린다
마지막 한 모금을 남겨두고
잠시 멈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당신도
이 잔 속에
조용히 머물 수 있을까
하지만
커피는 끝내 식고
잔은 비어 간다
남는 것은
입안에 남은 쓴 향과
가슴 깊숙이 내려앉은
그리움
나는 다시
빈 잔을 씻고
내일을 준비한다
알면서도
또 한 잔의 커피를
내릴 것이다
그리움은
언제나
커피처럼
혼자 마시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