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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by 홍윤표
카메라: OLYMPUS OM-1 / 필름: Kodak Colorplus 200 / 일자: 미상

전 두발자전거를 꽤 늦게 배운 편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친구한테 배웠죠. 원래 운동신경도 없었고 몸을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서 자전거에도 관심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6학년이나 됐으니 자전거 정도는 탈 줄 알아야 한다며 새로 사주신 게 계기였죠. 키보다 높은 안장 때문에 타고 내릴 때마다 가랑이가 너무 아파서 괜스레 친구에게 짜증 내면서 배웠죠. 그래도 그 친구는 제 짜증을 다 받아주며 차근히 가르쳤고 결국 전 자전거를 잘 타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에게 고맙고 미안하네요.

지금의 아내와 연애할 때 제가 아내에게 처음 자전거를 가르쳐줬습니다. 여주 어디쯤인가의 강변에 있던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가르쳐줬었죠. 운동신경이 저보다 좋은 아내는 제가 배울 때보다 훨씬 빠르게 배우더라고요.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딸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줬습니다. 제 엄마를 안 닮고 저를 닮아서 운동신경이 둔한 탓에 많이 서툴더군요. 타는 것도 싫어하고요. 중고거래로 산 두발자전거에 먼지만 소복이 쌓이고 있네요. 딸이 두발자전거를 타게 되면 우리 가족 모두 하천의 자전거길을 따라 한강까지 가는 게 제 꿈입니다. 언제 이뤄질지 모르겠지만요.

몸에 익힌 건 평생 안 잊어버린다고 하죠.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건, 누군가에게 평생 잊어버리지 않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건 꽤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구성하고 형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에 기여하는 느낌이랄까요. 비록 그게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말이죠. 마치 누군가의 노력과 사랑, 우정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각인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제가 그 친구의 우정을 잊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제가 받은 것만큼이나 저도 누군가에게 줬을 겁니다. 아내에게 자전거를 가르쳤고요. 언젠가 딸에게도 자전거를 완벽하게 가르칠 수 있겠죠. 그리고 또 언젠가, 딸도 누군가에게 어쩌면 자신의 아이에게 가르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겁니다.

생각만 해도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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