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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텅빈전단지 Nov 12. 2020

트레인스포팅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아니 뉴캐슬... 아니 뉴캐슬과 에든버러 사이

  1990년대 나는 교복을 입고 학교가 아닌 극장으로 종종 갔다.

   평일의 상영관은 조용하고 더러웠고 썰렁했다.  묘하게 매력적인 이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발 밑으로 고양이가 지나가기도 했고 한 번씩 영화 상영 중에 청소를 하기도 했다. (지금의 극장이 세련되고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화 플랫폼이라면 그때의 극장은 음.. 동네 목욕탕 정도의 느낌이랄까..)


   자주 갔던 극장에는 상영관이 두 개 있었다. 1층이 A관이면 2층은 B관으로 서로 다른 영화를 틀어 준다. 검표소는 매표소 옆 입구에 있어 한번 극장에 들어오면 마음 내킬 때까지 하루 종일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유주얼 서스펙트, 저수지의 개들, 다이하드 등 꽤 많은 영화들을 평일 낮의 개인 공간 같은 이 동네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Choose a life. Choose a job. Choose a career. Choose a family. Choose a fucking big television........, choose your future. Choose life...

But why would I want to do a thing like that?

 I chose not to choose life.  

-Trainspotting 대사 중 -

      기성세대가 만들어 논 선택지의 인생들에 반하는 주인공의 저 대사를 읽었을 때, 나도 내 인생의 모든 것들은 스스로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맘대로 살기로 다짐했다.)

   저 뒷 대사에 주인공이 어떤 것을 선택했는지 나오지만 앞부분에서 충격을 받아 주인공이 선택한 것은 기억에 남지 않았다. 다행히도.

  


  


    30대 중반 최근 듣던 이기 팝의 노래 때문인지 문득 렌튼이 뛰어놀던 고장으로 가보고 싶어 졌다. 트레인스포팅 영화가 불러온 추억 덕분에 희미한 흔적처럼 남아 있던 중2병의 후유증이 슬슬 진해져 신이 났다. 인터넷으로 East Coast 열차를 예매하고 아침 일찍 에든버러로 가는 기차를 탔다.

  10대 시절을 그렇게 탈선한 거도 아니고 또 그렇게 게 반듯하게 지낸 것도 아니었지만 (탈선은 하였지만 선로와 평행하게 달렸다고 할까...) 지금 이래저래 자립심 강한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음에는 분명 이 영화의 영향이 컸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뉴캐슬 중앙역, 새벽 6시 쓰레기차만 다닐 시간 들뜬 마음으로 렌튼을 만나기 위해 에든버러행 열차에 올랐다.


   전날부터 구글을 검색하여 촬영지, 동선 등을 다 파악해 놓았다. 오랜 고향 친구를 오랜만에 찾아가는 마음으로 들떠있을 다. 날씨가 흐렸지만 맑은 날이 드문 북부 잉글랜드였기에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도 저도 아닌 구간에서 기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선로 옆 언덕에 있는 양 떼들을 한참을 보고 있으니 기차가 다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은 개울 근처에서 다시 기차가 멈춰 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꽤 오랜 시간 기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날 때 즘 안내방송이 나왔다.

"지금 앞 구간 산사태로 인해 복구작업 진행 중입니다. 열차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

 '전 날 비가 많이 오긴 했지만 산사태가 날만큼 심각하진 않았었는데'라고 간단하게 생각했지만 산사태도 이 사태도 생각보다 심각했다.


평화로운 차창 밖, 평화롭지 않던 차내


 또다시 한 시간이 지나고 승무원이 두 잔째의 커피를 샌드위치와 함께 나눠 주었다.

"커피 말고 혹시 스텔라 있나요?"

"죄송합니다 손님. 열차 내부에는 무알콜 맥주만 구비되어 있습니다."

  평소에 마시지도 않는 맥주를 찾았다. 지루하기보단 취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었는지 아니면 창밖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더욱 감성적으로 느끼고 싶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대낮부터 거기서 왜 맥주를 찾았는지 모르겠다.


  또다시 한 시간이 지나니 열차 내부의 사람들이 동요 하기 시작했다. 뒤쪽에 앉은 할머니는 전화 상대에게 오도 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말하며 욕을 하였고, 딱히 해결책이 없는 승무원들에게 화를 내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빨리 판단을 내리고 나는 멍하게 차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한 시간 전에 커피를 나눠 주던 승무원이 나에게 종이봉투를 주면서 해당 경로가 종종 산사태로 인해 이런 일이 있다고 웃으면서 설명해주었다. 종이봉투 안에는 차가운 스텔라 한 캔이 이 있었다. 결국 산사태 작업은 마무리되지 못하였고 기차는 뉴캐슬 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게 좌석이 역방향이 되었지만 '아무렴 어때'하는 심정으로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기차 안에서 생긴 모든 일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런저런 선택들을 여태껏 운 좋고 그럴싸하게 해왔지만 정작 에든버러에게는 선택받지 못한 날이었다.




환불을 위해 이메일 주소를 적고, 주소를 적었다. 다른 오픈 티켓의 열차표가 몇주 후 집으로 도착 하였지만 쓰지 않았다.


산사태 + 신호 문제 등으로 열차 안에서 6시간 정도 감금되어 있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신났었다. 오로지 영화 촬영지를 보고 싶었던 나도, 내 뒤에 앉은 욕 잘하는 할머니도, 건너편의 말 많던 (정말 말 많던) 미국 엔지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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