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나는 울보였다. 눈물이 워낙 많고 겁도 많아서 틈만 나면 울음을 터뜨리고는 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사회화가 된 인간이 되다 보니 공개적인 장소에서 우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예전에 나는 내가 눈물이 많은 게 너무나도 싫었다. 누군가에게 약해 보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가족끼리 대화를 하거나 식사를 하다가 옛날 얘기가 나오고, 힘들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돼서 밥 먹다가 울기도 했었고, 나의 친언니와 함께 아빠에게 혼이 났을 때도 결국에는 나만 울었다. 슬퍼도 울지만 화가 나도 우는 아주 찌질한 성격에 억울하거나 화가 나도 우느라 하고 싶은 말들을 다하지 못하는 일도 일상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다행히도 이 감성충과 눈물쟁이가 쏟아낼 무언가를 찾았다. 이것은 나에게 아주 행운이었다. 어릴 때부터 눈물도 많았지만 생각도 심각하게 많아서 하루 온종일 머리가 비워지지 않은 채로 살았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그래서 혼자 글도 쓰고, 가사도 쓰고, 하면서 정리를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노래 부르는 것을 워낙 좋아했기에 내가 꿈을 찾고 진로를 정한 것은 꽤나 쉬웠다. 어린 나이에 친구들에게 인생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는 없으니 그 생각들을 모아서 가사를 쓰고 혼자 흥얼거리며 노래를 만들었다. (연습으로 발라드를 부를 때는 부르다가 운 적도 있는데 사실 내 노래에 감동을 받은 적은 없고 그냥 가사랑 멜로디가 너무 슬퍼서 울었다.) 아무튼 이런 모든 감정과 나의 생각들이 합쳐져서 울보싱어송라이터가 되었다.
사실 이 감정들을 다 쏟아내기에는 너무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한다. 곡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우울이 처음과 끝을 모두 장식한 노래들이 대부분이었고, 너무나 마이너 했다. 그리고 이 감정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솔직히 너무 미안했다. 공감이 가는 일이라면 괜찮겠지만 오로지 나 혼자만의 감정이고 생각들이라면 이기적인 노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공연을 하거나 앨범을 낼 때는 개인적 감정이 드러나있지 않은 노래들을 부르고 발매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깨졌었던 때가 있었다. 한 번은 공연 때 [나도 그대만큼]이라는 곡을 부른 적이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아서 나의 공연에 왔던 사람만 아는 곡일 테니 가사를 첨부해 봐야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를 기다리는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그대가 나라면 어떻게 할까
조금 더 좋게 만들지 않을까
나도 그대만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난 그게 안돼
다시 바라볼까 내 앞에 있는 나를
나를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괜찮지 않아도 마음이 아파도
그렇게 했던 그대처럼 나도
다시 세어볼까 우리 앞에 있는 날들을
해볼게 그대가 했던 것처럼
다 괜찮을 거야 할 수 있을 거야 믿을게
나도 그러고 싶어 웃으며 날 보고 싶어
마주할 수 없는 부족한 내 자신을
그대는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었을까
헤매고 잃어 겨우 도착한 곳에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어
그대가 했던 말들처럼 그럴 거라고
앞에 말을 이어서 해보자면 공연 때 이 곡을 부르기로 하고 셋리를 정리한 뒤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우울감을 주는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지 않았고 즐겁게 공연을 보러 와서 우울감을 가지고 집에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 일부러 밝은 노래를 많이 넣어서 공연을 하는 편인지라 나에게 이 선택은 어쩌면 꽤나 큰 결정이었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공연 당일 무대에서 ‘이 곡은 굉장히 우울한 노래입니다. 사실 셋 리스트에 넣을까 말까 많이 고민을 했었는데, 그래도 제가 너무 좋아하는 곡이어서 한 번쯤은 불러보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어 가져왔습니다.’라고 서론을 길게 깔고 난 후에 노래를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날 불렀던 곡 중에 제일 마음에 들게 불렀고, 가장 집중을 해서 불렀다. 노래가 끝난 후 적막하면 어쩌지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신기하게도 반응이 가장 좋았다. 그동안 내 공연에서 환호까지는 없었는데, 앞자리에 앉아계셨던 중년부부 관객분들께서 환호까지 질러주셨다. 정말 놀랐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나의 우울에 대한 곡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는 셋 리스트를 작성할 때 조금 더 다양하고 조금 더 우울한 곡들을 섞어서 하고 있다. 우울감은 어떤 누구보다 잘 표현할 자신이 있는 나여서 요즘 공연할 때에는 더 자신감 있게 꾸밀 수 있는 것 같다.
저의 사랑과 우울을 여러분들께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