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누리
내 친구 누리는 약 3년 전 어느 대관공연을 준비하다가 만났다. 사실 공연이 끝날 때까지도 그렇게 많이 가까워지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연락은 3년이 넘은 지금도 가끔은 띄엄띄엄 가끔은 자주 부지런하게 이어지고 있다.
우연하게도 2019년 7월 19일에 공연을 하고 딱 3년 만인 2022년 7월 19일 오늘, 누리를 만났다. 누리는 변함없이 환한 얼굴로 잔잔하게 날 반겨주었다. 심하게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우리는 골라놓았던 쌀국숫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덥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꿋꿋하게 목적지까지 갔지만 가게는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우리는 J형 인간이라 수 없이 한 사전조사로 브레이크 타임이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게 뭔 소리인가.) 잠깐의 절망 타임을 가지고, 우리는 새로운 쌀국숫집을 찾아 다시 걸었다. 한 5분 - 10분쯤 걸었을까. 사장님이 홀로 가게를 지키고 있는 정감 가는 쌀국숫집에 도착을 하고, 익어버린 몸을 시원한 에어컨 바람으로 식혔다. 메뉴는 화려하지 않지만 알차게 필요한 메뉴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사장님은 친절하게 메뉴를 추천해 주셨고, 우리는 사장님의 말을 따라 분짜와 양지 쌀국수를 시켰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워낙에 맛없는 게 없는 입맛이라 너무 주관적이지만, 즐겁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먹은 음식은 정말 최고였다.
카페로 바로 가기는 아쉬워서 독립서점을 찾다가 좋은 곳을 발견해 목적지를 설정하고 우리는 다시 걸었다. 놀랍게도 불은 켜져 있었지만은 굳게 닫혀있었다. 데자뷔일까.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독립서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차가워 보이는 건물이었지만, 책이 예쁘게 정리되어 있어 따뜻해 보이는 '어쩌다 책방'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가게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둘러보니 알찬 책 구성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 읽은 책들, 읽고 싶었던 책들을 발견하며 고민을 하다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골랐고, 고민을 하고 있던 누리에게 내가 최근에 울면서 읽었던 '안락'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었다. 누리는 갑자기 내가 들고 있던 책과 자신이 들고 있던 책을 바꾸더니 "우리 서로 선물하자!"라는 말을 했다. 그 순간 누리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저 내가 사고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선물해 준 책이라는 의미를 책들에게 부여해준 것이다. 이해할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그 순간 그 책은 나에게 '읽고 싶었던 책'의 의미를 떠나 '소중한 사람이 준 소중한 책'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4개월 전 내 생일 선물로 준비했다던 윤동주 시인의 시집과 사랑이 담겨있는 편지까지 함께 넣어 주었다. 난 그때 정말이지 행복해서 누리를 안고 싶었다.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풀내음이 가득한 카페에 도착을 했다.
음료를 시키고, 우리의 원래 목적인 '필름 카메라 찍기'를 실천했다. 둘 다 카메라를 어색해하기 때문에 서로를 몰래몰래 카메라에 담으며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 주고받았다. 꾸준히 연락을 했어도 실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할 말이 정말 많았다. 급하지 않고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너무 평화롭고 즐거웠다. 이 시간을 반복하다 보니 4시간 정도가 지나있었고, 우리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 짐을 챙겨 카페를 나왔다.
날씨는 기분 좋게 바람이 불었지만, 살짝 더운 날씨였다. 우리는 걸으면서 카메라로 하늘을 음미하고, 눈에 비친 서로를 찍고, 새로운 방법으로 카메라를 쓰며 놀았다. 짧지만 길었고, 긴 시간이었지만, 너무 짧게 느껴진 그 시간을 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모든 것들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누리는 잔잔하다. 그리고 친절하다. 누리의 바다에 내 발을 담그면 부담스럽지 않게 나를 맞이해 주고, 사랑스럽게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다. (사실 누리는 바다보다는 연못에 가까운 것 같다.) 나도 누리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누리가 날 필요로 하고 나를 보고 싶어 할 때 내 얼굴을 빼꼼히 내밀어 웃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