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1.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젊은 시절의 낭만. 2.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 낭만이 가득한 목소리.
나에게 낭만은 꼭 지켜야 할 무언가이다. 흔히 말하는 창작의 고통 속에서 이 낭만은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갑고 멋을 다 버리고 말을 하자면 현실을 보고 싶지 않을 때 그리고 음악을 포기하고 싶을 때 내가 가장 작아지고 쓸모없게 느껴질 때 내 안에 있는 낭만을 보면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했었던 지난날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
‘낭만이 밥 먹여주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맞다. 낭만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낭만을 지키려 현실에 닥쳐있는 경제적 여유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낭만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의 초심을 찾아주고, 때 묻지 않은 나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에게 ‘낭만이 밥 먹여주냐’라고 한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그 후에 ‘낭만은 나를 지켜준다.’라고 꼭 말하고 싶다.
몇 달 전에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했었다. 충무로에 있는 문구제작 사무실이었는데, 시급도 만원이었고, 주어진 일을 하고 단순반복 작업이었기 때문에 꽤나 꿀알바라고 생각을 했다. 가장 좋았던 점은 일할 때 말을 시키지 않고, 개인적으로 점심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사무실 직원분들과 굉장히 빨리 가까워졌고, 사무실 환경과 일에도 생각보다는 빨리 적응을 했다. 사실 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서 금전적으로 어느 정도는 여유가 생겼다. 아무래도 카페 알바와 보컬 레슨으로 겨우 먹고살던 나에게 일주일에 2번 충무로를 가서 하루에 7만 원을 버는 것은 꽤나 쏠쏠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출근 전날 대표님에게 메시지로 해고 연락을 받았다. 아르바이트를 잘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이 문자는 굉장한 충격과 상처로 다가왔고,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다. 그리고 화가 좀 사그라든 뒤에는 걱정이 시작되었다. 나는 무조건 한 달 소비/수익 예산을 짜놓고 지출을 하는데 갑자기 6-70만 원이 공중으로 붕 떠서 사라진 것이다. 사실 생활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적은 금액이 아니다 보니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불씨가 튀었다. 음악에 대한 불안감이 생긴 것이다. 아르바이트에 잘리고 나서 나는 바로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했다. 매일 새벽 구직공고를 뒤지고, 이력서를 넣고 이 생활을 약 일주일 간 했는데, 그때가 종강을 하고 방학기간이었어서 그런지 자리도 없고 시간도 애매했다. 아르바이트에 대한 생각으로만 살다 보니 음악에 대한 열정도 이상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에 또 한 번 겁이 났다. ‘나는 음악을 하려고 돈을 버는 것인데, 왜 돈을 벌려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식게 내버려 뒀을까’ 하는. 그리고 이런 고민이 처음이라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친구는 꽤나 놀란 듯했다. 매번 낭만을 외치던 내가 돈 때문에 낭만을 잃었으니 놀랄 만도 했다. 그만큼 나에게 큰 고민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돈은 따라온다. 낭만 잃지 말아라.’ 대강 이런 뉘앙스로 얘기를 해줬었는데 (뭔가 더 좋고 멋진 말이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나에게 낭만을 잃지 말라는 얘기를 해준 친구가 처음이라 그런지 더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의 SNS 부계정에 글을 썼다.
알바를 처음으로 잘렸다. 일이 없다는 이유로.
생각이 많아져서 (친구)랑 얘기를 했다.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지고 돈에 대한 불안감에 음악에 대한 생각도 흐릿해져 갔다.
수많은 고민들과 겹쳐지는 상황들 안에서 (친구)의 말로 나는 새로운 시야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닥치고 낭만 찾아 음악은 낭만 없이 할 수 없어.
그냥 열심히 하자. 열심히 잘하자. 그냥 하는 거지 뭐. 돈은 따라올 거야.
그래서 이 날 이후로 ‘일단 열심히 살아보자 대신 낭만을 잃지 않으면서 열심히 살아보자.’라는 생각을 머리에 새기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생각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생각이라는 것은 나를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고 괴롭게도 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하기도 하지만, 용기를 주기도 한다. 이 생각을 하고 난 후 용기를 내어 같이 작업을 하고 싶었던 아티스트분에게 연락을 해서 작업을 시작하고, 공연도 더 많이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레슨생을 더 구해서 경제적 면도 어느 정도 채웠다. 지금 나의 생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나는 모르지만, 이렇게 글을 써놓았으니 언젠가 내 낭만이 흐트러질 때 이 글을 보면서 다시 한번 내 뺨을 때리고 낭만 감성충으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