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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연 Nov 30. 2024

닿을 수 없는 거리 2화

그렇게 진이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아까 진이가 한 말을 계속 곱씹어 생각해 보았다. ‘죽고 싶은 사람이 있나? 죽으면 끝 아닌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만약 진이가 죽는다면이라는 가설은 나에게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사이로 진이를 다시 볼 수 없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피어올라서 다음에 진이가 카페에 온다면 꼭 사과하리라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


약 3주가 지났다. 진이는 내가 일하는 카페에 오지 않았다. 분명히 그날 나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에게 실망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울함과 약간의 짜증이 올라와서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버렸다.

'띠링'

카페 종소리가 울리며 진이가 들어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고 갈게. 오늘도 5시에 끝나?”

나는 그렇다고 말하며 주문을 받았다. 진이는 끝나고 같이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며 약속을 잡으려 했고, 나는 싫지 않았기에 알겠다고 답했다.


퇴근을 한 후 진이와 함께 짐을 챙겨 카페밖으로 나왔다. 한여름이 시작되던 때라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비 오듯 옷을 적셨다. 진이는 자기만 따라오라며 앞장섰고 나는 궁금함과 동시에 이 더운 날 멀리만 가지 말아 달라는 생각을 삼킨 채 뒤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카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산책로였다. 사람이 붐비는 메인 거리가 아닌 그 옆쪽에 숨겨진 벤치에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나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까 생각하다가 더듬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진아 저번에 내가 네 말 듣고 했던 말… 미안해.”

“아냐, 난 오히려 좋았어. 사실 내가 가지고 있고 바랬던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한 게 처음이었어. 그리고 그 바람에 대해서 화를 낸 것도 네가 처음이었어. “

진이는 담담하게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그 말 끝은 고맙다는 말을 하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카페를 가면 네가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줬어. 설령 그게 그저 손님을 대하는 친절함의 웃음이었을지라도 나는 그게 너무 따뜻하더라. 그래서 난 네가 궁금했어. 삶이란 너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처럼 억지로 버티고 죽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없어 보여서 사실 부러웠어.”


내가 부러웠다고? 삶이 나에게 무엇일까… 짧은 시간 동안 생각을 해봤지만 그 흔한 단어 하나조차 내뱉거나 생각나지 않았다.

나에게 산다는 건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들을 마음껏 하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이었고, 그저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진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무 생각 없이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설희야, 나는 저번에 너에게 말한 것과 같이 죽음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사는 게 힘들다기 보단 죽어야 나는 의미가 있어질 것 같아. 죽으면 지금 살고 있는 내 주변을 떠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잖아. 나는 그저 내 사람들을 보고 싶어.”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은 그런 애매한 하늘 밑으로 보인 진이의 눈에서 약간의 눈물을 보았다. 나는 완벽하지 못한, 정확히는 확신에 차지 못한 단어들을 조합해 진이에게 나름대로 나의 삶에 대한 철학을 말해주려 애썼다,


“진아, 내가 생각하는 삶이란 말이야, 행복인 것 같아. 내가 무엇을 꿈꾸면 그걸 노력할 수 있는 이유가 생기고, 그걸 하나씩 더하고 이루어나가면서 스스로를 키워나가는 여정인 것 같아. 슬픔보다는 행복이 더 가득하다고 믿거든. 그리고 사람은 늘 변할 수 있다고도 믿어... 그러니까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말을 마무리 짓기 전에 진이가 내 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난 내 사람들이 없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어. 난 늘 누군가의 누구라는 칭호를 가지고 살았는데, 다 떠나고 난 후에는 난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어. 그래서 난 그 칭호를 다시 얻고 싶어. 그 사람들이 보고 싶어.... 매일 내 사람들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만 가득 생각이 나. 그래서 해주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아. 잠들기 전에 혹시나 있을지 모를 어딘가의 신에게 기도해. 제발 이 삶에서 나를 없애달라고... 나를 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달라고. 내 자리를 다시 찾아달라고 그렇게 기도해. 그러니까 너만큼은 나를 응원해 주면 안 될까?”


순간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했던 진이의 마음은 아주 오랫동안 상처가 나고 곪고 덧나서 더 이상 어떠한 상처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흉터가 피부 속으로 스며든 듯 올곧았다. 나의 마지막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진아, 내가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러니까 너도 살아줘. 내가 옆에 있을게.”


나는 진이와 걷고 걸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진이도 아무 잘못 없는 하늘만 볼뿐 내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응원해 달라니.... 죽기를 응원해 달라는 건 전혀 상상하지 못한 소원이었고,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적어도 나는 진이의 옆에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진이를 보지 못한 그 며칠 동안 계속했기 때문에 오히려 배신감이 들었다.  진이의 이름을 알게 되고 어떠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작은 것들은 알고 있었지만, 큰 것들은 알지 못했다.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죽기를 응원해 달라는 말 뿐이었기에, 나는 진이를 알지만 알 수 없었다.


주에 한 번씩 진이는 내가 일하는 카페로 왔고, 퇴근을 하면 항상 저녁을 함께 먹고 산책을 하며, 그날 있었던 일들을 나누고는 했다. 새하얀 진이의 얼굴은 여름 저녁의 날씨처럼 빛났고, 오래 걸으면 걸을수록 빨갛게 홍조가 올라왔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웠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진이가 내가 가지고 있지 못했던 어떠한 부분을 채워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진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진이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째서인지 더욱더 진이의 바람을 응원해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이가 내 곁에 있었으면 했고, 내가 진이를 지켜주고 싶었다. 하루는 진이가 나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말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나는 내 꿈을 이루고 싶어."

"안돼, 싫어, 절대 안 돼."

나는 너무나 놀라서 안된다는 말과 싫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날은 9월 초였고, 올해가 가기 전에 꿈을 이루고 싶다는 건 내가 진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이 4개월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이는 나의 전부가 되어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렇게 나에게 스며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진이를 4개월안에 내 곁에서 떠나보내야 한다는 건 너무나 가혹하고 인정하기 싫은 말이었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왜 죽고 싶어 하는지도 알고, 내가 응원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알아. 근데 진아, 너 너무 이기적이다. 나는 너한테 바라지 않아, 아니 딱 하나 바라는 건 네가 내 옆에 계속 있는 거야. 나와 함께 숨을 쉬면서 삶을 살아가면서 나랑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것들도 보고, 하고 싶은 것들도 찾으면서 그렇게 나한테 사랑받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어. 내가 널 응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너도 날 좀 응원해 봐."

"설희야.... 나는...."

"그만 좀 해. 내 옆에 그냥 있으라고. 제발 내 옆에 있어줘 나는 이제 네가 전부가 되었단 말이야."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처럼 화를 냈다가 애원했다가 다시 화를 내며 진이에게 매달렸다. 누가 보면 연인사이에서 이별을 통보받은 사람의 모양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보다 훨씬 심각했고, 간절했다. 진이가 살아있는 동안 내가 볼 수 없는 것과 진이가 죽어서 이 세상에 없어서 볼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달랐다. 전자와 후자 모두 나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진이는 절대 내 곁에서 사라지면 안 될 존재였다.


"설희야 일단 오늘은 먼저 가볼게. 데려다주지 못해서 미안해. 연락할게. 조심히 들어가."

진이는 울고 있는 나를 골목에 버려두고 뒤를 돌아 반대편으로 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쓸 겨를 따위 나에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나는 당시에 슬펐고, 화가 났고, 진이가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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