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자랑

by Ubermensch






작년 가을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 나무 두 그루였다. 나무를 갖고 싶다는 내게 누가 동백나무와 오렌지자스민 나무를 선물해줬다. 나는 현 부서 유일한 지원인력 신세로 지원을 나올 당시에는 오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막상 와서는 적응을 해버렸고, 복귀할 상황에 처하자 내 본 소속 부서는 빽이 있어야 갈 수 있다는 청내 선호부서임에도 돌아가기가 몹시 싫어졌다. 우리 부장님도 나를 빼앗기기 싫으셔서 고군분투하셨다. 결론적으로 아직까지는 이곳에 남아있다. 당시 내 고용불안 상황에 대한 상징적 저항으로 나는 수레에 나무 두 그루를 싣고 사무실에 가져다 두었다. 나무들과 함께 이곳에 뿌리를 내릴 작정으로.


부장님은 내가 가져온 나무 중 특히 커다란 동백나무를 탐내시면서 부장님 방에 두자고 몇번이고 말씀하셨다. 잘 키워주신다면서. 나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제 나무인데 부장님 사무실에 두면 볼 수가 없잖아요. 내 방에 와서 보면 되잖아. 제 시야에 두고 싶은데요. 내 방에 자주 오면 되잖아. 싫어요. 싫다구요.


자리도 지키고 나무도 지켜낸 나는 가을부터 겨울내내 나무 두 그루를 정성 들여 돌봐주었다. 물도 듬뿍듬뿍 주고 추워지는 시기에는 식물용 영양제도 사다가 링거처럼 꽂아두었다. 오렌지자스민 나무에는 붉고 작은 열매가 방울방울 열렸다. 그 나무는 원래 조그맣고 데려올 때 잎이 많이 떨어져서 아직은 좀 연약해보인다. 내가 특히 애정을 쏟은 것은 동백나무였다.


아직까지 살면서 동백꽃을 실물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전에 고소한 정수리가 동백꽃이 유명한 숲에 데려가준 적이 있었지만, 우리가 동백꽃 시즌에 맞춰가지 않아서 꽃을 보지는 못했다. 옆방 부장님 말씀에 의하면 동백꽃은 너저분하게 피고 지는 꽃이 아니라고 한다. 꽃이 한 번에 만개했다가 한 시기에 동시에 낙화하는 지조 있고 우아한 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동백꽃 피는 때가 더 기대되고 많이 보고싶었다.


겨울에 핀다는 동백꽃은 겨울이 다 가는 내내 아무리 기다려도 피지 않았다. 앞자리 계장님은 초록 몽우리들만 보이고 꽃이 필 기색이 없는 내 동백나무를 보고 이건 사실 올리브 나무가 아니냐고 빈정거리셨다. 나는 예전에 제주도에서 사 온 동백꽃 모양의 커다란 포스트잇을 화분에 붙여놓고 꽃이 피길 염원했다. 정보를 찾아보니 동백꽃은 추워야 핀다고 했다. 사무실 안에 있느라 난방 때문에 나무가 겨울이 온 줄 모르나 싶었다. 화분을 조금 더 차가운 창측으로 옮겨봤다.


우리 회사는 보안점검 때문에 퇴근 시 창문을 열어두고 나무에게 찬바람을 쏘여줄 수가 없었다. 일과 중에 앞자리 계장님과 실무관님을 추위에 떨게 하며 창문을 열고 있을 수도 없고, 화분이 굉장히 크고 무거워서 매일 그걸 어디론가 밖에 내놓았다 들여놓았다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이번 겨울에 동백꽃은 못 보는가 싶었다.


절기상 입춘이 왔고, 매일매일 창가에 서서 몽우리들을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붉은 꽃망울 두 개가 눈에 띄었다. 나는 큰소리로 부장님을 불러 동백꽃이 피려나 보다고 자랑했다. 짙은 초록들 사이를 비집고 나온 분홍이 무척이나 예뻤다. 초록색 몽우리는 열개도 넘었지만 딱 두 곳에만 꽃의 기미가 보였다.


넉 달이 넘게 기다렸다. 짙은 초록잎 사이를 잘 헤쳐야 자그마한 붉은 꽃망울 두 개가 간신히 보인다. 동백은 겨울에 핀다고 하지만 조그맣게 머리를 내민 선홍빛에서 봄이 느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창가로 가 까치발을 서서 꽃망울을 들여다본다. 꽃을 틔워준 나무에게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