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형

별건 없고, 그냥 커다랗고 잘생기면 돼

by Ubermensch






많은 남자들이 이상형으로 예쁘고 착한 여자를 꼽듯, 나도 누가 이상형을 물어보면 키 크고 잘생긴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내 기준 대체로 그런 사람을 만나왔다. 사실 예쁘고 잘생김의 기준이란 어느 정도의 보편성이 있기도 하지만 또 사람마다 다르고 주관적인 부분이 크기 때문에, 자기 눈에 그렇게 보이면 장땡이다. 나는 강제로 연애를 당한 경우를 제외하곤 항상 키 크고 잘생긴 남자친구를 만나서, 막 싸우는 순간에도 얼굴을 보면 화가 스스륵 풀리면서 웃음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또 이상하게, 내 주변 여자 친구들은 나랑은 절대 남자로 싸울 일이 없을 거라며 다행이라고 한다. 내 지난 남자친구들을 보여주면, 응 그래 네 남자친구 괜찮은 건 알겠어. 근데 내 취향은 아니야.라고들 한다. 요즘 여자들은 무쌍이나 속쌍꺼풀의 연한 두부상 훈남 스타일을 많이들 선호하는 것 같은데, 나는 좀 부리부리하고 선이 굵은 아랍상이나 90년대 고전 미남상을 좋아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내 이목구비는 내가 생각하기로는 오밀조밀하고 연한 편인데, 유독 선이 짙고 뚜렷한 남자들이 나를 예쁘게 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긴 사람을 만나서 오래 보다 보니, 그런 큼직하고 진한 이목구비에 익숙해져 버렸고, 그런 생김새를 잘생겼다고 느끼게 되어버린 거다.


내가 남자를 볼 때 특히 중요한 건 큰 키와 큰 눈이다. 이건 물론 미적으로 보기가 좋은 것도 있지만, 내게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나는 습하고 진한 스킨십은 크게 선호하지 않지만 포옹은 좋아하는데, 듬직하고 커다란 품에 폭 안겨 있을 때면, 세상의 모든 거칠고 험하고 매서운 풍파가 그 순간만큼은 가려지는 것 같아서 참 좋다. 그런데 내 기준에 충분히 커다랗지 않은 사람의 품에 안기면, 그 험난한 세상이 어깨너머에 그대로 펼쳐지기 때문에, 그걸 가려주지 못하는 사람과는 연애를 할 수가 없다.


눈웃음도 아니고 눈의 크기는 왜 중요하냐면, 눈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을 말로 듣기보다는 상대의 눈에서 읽거나 행동에서 느끼기를 훨씬 좋아한다. 커다랗게 확장된 동공, 그 안에 나를 살피고 염려하는 보호 본능, 아기처럼 여기고 귀여워하는 마음, 들끓는 열정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게 보인다. 말로는 거짓을 꾸며내기 쉽지만 눈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꿀 떨어지는 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화가 나거나 사랑이 식을 때도 눈빛에서 바로 티가 난다. 나는 항상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고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남자를 만날 때 나는 학벌도 직업도 재산도 집안도 안 따진다. 실제로 나보다 학벌이 더 좋은 남자를 만나본 적도 없고, 대단한 직업의 사람이나 특별히 돈이 많은 사람을 만나 본 적도 없다. 막 리더십 있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그런 대중적으로 좋게 평가하는 성격에도 끌리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에게도 큰 관심이 없다. 요즘 여자들은 이상형으로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많이 꼽는데, 나는 나를 존경하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


강제 연애를 제외하고는 나는 항상 내가 만났던 남자친구들에게 충분히 만족했고, 상대에게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여겼다. 살면서 나에게 고백을 한 남자가 몇 트럭은 됐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달리 먹고 그들이 가진 다른 장점의 비중을 높이 평가해서 선택했다면, 그중 한 명과 지금쯤 부유하고 여유롭게 애를 셋쯤 낳고 살고 있을 거다. 근데 그러지를 못하는 게 참 문제다.


전에 어떤 사건 피해자 중에 지능이 열두 살 이랬던가, 여덟 살 이랬던가 하는 40대 지체장애인도 남자친구가 있길래, 검사님 이런 장애인들도 연애를 하는데 저는 왜 남자친구가 없을까요? 했더니, 검사님은 내게 본인을 돌아보시오. 했다.


몇 년 전 우리 엄마는 사촌 동생 결혼식에 갔다가 올림머리 가채 비용이 엄청 비싸다는 걸 알게 된 후, 내 결혼식을 대비해 머리를 기른다고 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렀고, 엄마가 머리를 기르며 하염없이 기다려도 내 결혼식은 감감무소식이므로, 엄마는 결국 포기하고 머리를 짧게 잘라버렸다.


나는 아무래도 혼자 살 팔자인가 보다. 기왕이면 잘 살아야지. 씩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