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사랑 이야기는 마치 만화경처럼
다채로운 색과 형태로 빛난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의 파편들은
색다른 모습으로 내 이목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난 여전히 클리셰를 사랑한다
오래된 이야기 속에 담긴
고전적인 사랑 이야기가 좋다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마침내 사랑의 결실을 보는
그 예측 가능한 마법의 순간이
내 마음을 따듯하게 한다
중국 무협 문학의 정수라 불리는 《사조영웅전》은 김용 선생님의 손에서 탄생한 걸작이며, 저에게도 가장 깊은 애정을 품게 한 작품입니다.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인간의 성장과 신념, 사랑과 운명이 복잡하게 얽힌 거대한 서사시와도 같은 이 작품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 감동을 잃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는 남녀 주인공은 끊임없이 엇갈립니다. 단순한 오해나 순간적인 갈등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얽힌 원한과 복잡한 가치관의 충돌이 그들을 가로막습니다. 때로는 피할 수 없는 가문의 반대가, 때로는 각자가 걸어온 길이 서로를 밀어내는 벽이 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난관을 뛰어넘어, 결국 두 사람은 끝내 서로에게 도달합니다. 그 과정이 길고 지난할수록, 그들의 사랑은 더 단단해지고 깊어집니다.
그러나 요즘의 작품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점점 더 빠른 전개를 요구받고, 독자들은 긴 호흡을 견디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위 ‘고구마’ 같은 상황이 길어질 틈이 없습니다.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보다, 즉각적인 자극과 강렬한 갈등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관계 역시 속도와 감각적인 요소에 의해 소비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고전을 사랑합니다. 예측 가능한 클리셰로 가득 차 있다고 할지라도, 그 서사의 전형성 속에서 오히려 따뜻한 위안을 찾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말의 신선함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의 결이 아닐까요? 전형적인 서사 구조 속에서도 작품은 각기 다른 빛을 발하며, 익숙하지만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세상이 점점 더 자극적인 서사를 요구하고, 이야기들은 더 빠르고 강렬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 사랑만큼은 그런 흐름을 따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속도와 흥분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여가는 감정과 서사가 중심이 되는 사랑. 온기가 먼저이고, 깊이가 있는 감정이 남는 그런 관계. 그것이야말로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을, 제가 지키고 싶은 가치입니다.
윤태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