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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이드 Sep 01. 2024

4. 내구성 약한 다섯 살 연상의 여친

삭신까지 쑤시게 만드는 깊은 상사병

***영화 <러브 미 이프 유 대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그의 고정휴무인 월요일이었다.

비가 오면 집에서 쉬고 안 오면 데이트를 하기로 했는데, 피곤했는지 내심 비가 오길 바라는 눈치였다.


안 돼. 귀찮아두 와죠!


 결국 그날의 예보는 구름 한 점 없이 해가 쨍쨍해 일을 마칠 때쯤 내가 일하는 곳으로 데리러 오기로 했다. 일이 조금 늦어져 남자친구는 매장에서 레모네이드를 시켜 테이블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그를 보낸 이후 일터로 복귀했을 때, 주방 유리창 너머로 음료를 마시며 앉아있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결국 나는 일을 그만두게 됐다. 장례를 마치고 바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판단이 나를 낭떠러지에서 밀어버렸다.



 일하다가 순간순간 느닷없이 눈물이 나고, 근육들이 미쳤는지 안 아프던 팔뚝과 손아귀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가벼운 크림을 짜는데도 꽝꽝 얼어있는 다진 마늘을 손으로 쥐어짜고 있는 느낌이 들고, 오븐을 닦는데 어깨가 빠질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점심에 쥐똥만큼 먹은 쌀국수마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내 건강을 계속 체크하던 친구가 준 정보로는, 너무 깊은 슬픔이 오면 실제로 몸이 아픈 증상이 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심장 박동이 내가 의식할 정도로 크게 뛰기도 하고,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가 쿡쿡 쑤셨다. 잠이 안 와 카페인을 끊었더니 생긴 부작용일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커피를 마시든 안 마시든 똑같았기 때문이다.

셀프 진단 결과, 상사병이었다. 상사병도 병으로 쳐주려나. 그러면 그냥 병가를 내는 게 맞으려나.

 


 회사에선 내가 침울한 상태로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일을 해도, 제시간에 일을 못 끝내도 아무도 아무런 눈치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배려해 준 동료들 뿐이었는데, 내가 나를 용납할 수 없었다.



 정말 이대로는 안 될 일이었다. 회사에서 많은 나이에 속하는 나는 그에 걸맞은 모습으로 점잖게 말하고 싶었으나, 내 입은 그걸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일 못하겠어요ㅠ


 


 철딱서니 없는 한 마디로 시작한 면담은 금방 끝이 났다.    힘들어 보이니 오늘 얼른 가서 쉬고, 휴직으로 돌려줄 테니 쉬고 싶은 만큼 쉬다 오라고 했다. 다정하고 차분한 면담에 눈물만 계속 났다. 그렇게 한 달을 넘게 더 쉬고도 나를 못 믿게 된 나는, 비슷한 온도로 다정한 다른 상사와 면담을 다시 한 뒤 좋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회사를 나왔다.


-


 

 너덜너덜한 멘탈로 가만히 누워있는 것 밖에 못하는 무쓸모 인간이 되어버린데 대한 좌절감이 결국엔 포크레인으로 변신해 나를 들어다가 깊은 구덩이로 집어던져 버렸다.



너무너무 보고 싶다니까!



 아무리 고래고래 외쳐봐도 그  나 혼자 뿐이었다. 깊은 구덩이 안에서 시멘트가 부어지기를 기다리는 <러브 미 이프 유 대어>의 소피와 줄리앙처럼, 나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할 도리가 없이 주기적으로 쏟아질 그리움의 시멘트를 속절없이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영화 속의 걔네들은 일부러 들어가 함께하는 해피엔딩이기라도 하지, 나는 혼자 던져진 그 구덩이 안에서

그가 마지막에 보내준 '네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보내'라는 제목의 릴스를 돌려보며 처량하게 웅크리고 눈물이나 흘리고 있는 지지리 궁상이었다.



 무기력한 내가 너무 한심하기 짝이 없고 짜증이 났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함께한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회사에서 받은 경조 휴가만 쓰고 바로 복귀를 한다는데, 나는 고작 5년을 함께한 사람을 잃고 한 달이 넘게 쉬고도 직장으로 못 돌아가다니. 이 상황도 스스로도 원망스러웠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갉아먹는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일을 하면 생각이 덜 나려나 싶어 '다시 복귀한다고 해볼까?'마음을 먹기도 했었다.

 그러다가도 출근을 하게 됐을 때, 다시 한번 더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면 평생 일을 할 수 없을 거란 두려움이 몰려왔다. 게다가 이른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내 직업 특성상, 편안한 밤 잠을 잃어버린 나는 이미 자격이 박탈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실 근본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을 때리고 찢고 밟아서 계속 괴롭고 싶었다. 그게 왠지 마음이 더 편했다.


 이 생각들 전체가 루틴이 되어 돌다가, 지금은 낡고 녹슨 레일  전원도 깜빡깜빡하는 먼지 쌓인 장난감 기차 같은 상태로 멈춰있다. 이 내구성 약한 기차를 어떡하지. 이번 생은 이렇게 고장 난 채로 가야 하나?


 아이돌 장원영 씨는 잘못 하나 없이 그렇게 많은 악플들을 받으면서도 '나를 믿는 힘'으로 강하고 야무지게 삶을 살아 낸다는데, 그야말로 내구성 갑이다. 나는 나를 못 믿는 신용불량자 신세로 하루를 연명하고 있는데. '럭키 비키 사고'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온종일 하는 게 머리 아파 한밤중에 잠수교를 걷고 들어왔는데, 상사병에 단단히 걸려 고장 난 기차가 먼지 가득한 채로 고장 난 레일 위에서 다시 삐그덕 움직였다.

그 기차를 말없이 바라보던 내가 말했다.

"어우,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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