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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May 09. 2020

비가 오는 날도 좋아요

일곱번째 이야기, 2020년 5월 9일 토요일. 날씨 비.

대개 날씨가 좋다, 말할 땐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을 말하지만, 어떤 날씨를 좋아하냐 묻는다면 주저할 수 밖에 없다. 어릴 적부터 날이 화창하고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밝은 표정으로 거리를 메우면 괜시리 곁에 있는 이에게 툴툴대거나 그늘진 곳에 앉아 담배나 피우며 멀거니 바라보는 일이 잦았다. 지금 생각하면 괜한 심술 또는 질투 따위의 감정이었던 것 같은데 딱히 이유는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은 달랐다. 새벽부터 일어나 빗방울에 숨이 트인 흙과 나무의 냄새를 맡으며 공기가 좋다, 말하고 창가에 맺힌 빗방울들이 마치 하나하나의 생명들인양 말을 걸기도 했다. 어릴 때의 일이지만, 지금도 맑은 날보다는 흐린 날을, 그보다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는 것은 몇 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때문인지 그 간의 연인들은 대개 이런 마음을 이해하거나 나처럼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정작 결혼은 정반대의 사람과 하게 됐다. 비오는 날보다 화창한 날을 압도적으로 좋아하고, 비가 오면 좋아하는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말한다. 처음엔 안맞는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 이유가 있겠지 하고 만다. 내가 모르는 이유들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가 오는 날도 좋아요

봄아. 오늘 네가 만난 바깥 세상은 어떤 느낌이었니.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비가 오고 있었어. 비 오는 날, 너를 데려 나간 것은 처음이었는데 엄마는 네가 비에 맞을까 가슴 속에 너를 감춰 넣기 바쁘더구나. 비가 오면 사람들은 우산을 쓰거나 비옷을 입고 웅덩이를 피하며 발걸음을 재촉하곤 하는데, 비에 젖은 채 오래 있으면 열이 나거나 감기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일꺼야.


비를 맞는 건 좋지 않지만 비가 오는 건 좋은 거란다. 엄마, 아빠가 매일매일 물을 마시듯 비가 오면 땅이 촉촉해지고, 땅에 뿌리 내린 풀과 나무가 쑥쑥 자라나거든. 그래서 일까, 비가 오는 날 비릿한 풀냄새와 텁텁한 나무향이 더욱 짙어 지는데,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평소 말이 없던 친구가 신나게 수다를 떨듯 서로 다른 내음이 공기에 섞여 그 날만의 맛이 느껴지곤 한단다. 그 맛은 아마 너만 알 수 있는 맛이라 더욱 달거야.


어릴 적 아빠나 아빠친구들은 비 맞는 걸 피하지 않았던 것 같아. 비가 와도 운동장에 떼거리로 몰려나와 미친듯이 뛰어 다녔고, 땀과 비에 젖은 몸에 열이 올라 저마다 머리 위로 수증기가 피어 올랐어. 학교가 끝날 때쯤 급작스레 비가 오면 교문 앞에 몇몇의 엄마와 할머니가 마중을 나오기도 하셨는데, 누군가 마중온 친구들을 마마보이라 놀려댔고 다같이 비맞고 가는 걸 자랑스레 여기곤 했지. 아마 그땐 그게 좋았던 것 같아.


아, 오늘 내린 비는 다시 하늘로 가 어떤 날의 구름과 비가 되어 돌아올꺼야. 앞으로 셀 수 없는 우산을 잃어버릴 것이고, 누군가의 우산을 빌려쓰고 감사하다 말할 날도 있을 것 같아. 비에 젖으면 춥고 쓸쓸하지만 비에 젖은 너를 보고 보듬어줄 사람들을 만나게 될거야. ♣


언제 뒤짚을 것인가.

이번주 봄이는

소리를 엄청 많이 내기 시작했다. 꺅꺅 소리 지르는 일도 많아서 깜짝깜짝 놀란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 같은데 그것도 복불복이어서 대중이 없다. 볼에 살이 올라서 눈이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다. 여덟시 반쯤 목욕하고 바로 잠들면 새벽 다섯시쯤 깼다가 다시 자서 일곱시에 맘마를 먹는데, 이정도면 효자 같다. 새벽에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런 것들을 나중에도 기억할 수 있을까.


이번주 아내는

족저근막염이 와서 제대로 걷질 못한다. 집에만 있는 사람이 왠 족저근막염일까, 싶었는데 봄이를 많이 안고 있어서 뒤꿈치 쪽에 무리가 온 것 같다. 안쓰럽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 토요다 테츠야, 커피시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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