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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토 May 30. 2020

달리기는 심하게 정직해

열번째 이야기, 2020년 5월 30일 토요일. 날씨 더움.

어릴 적부터 장거리보단 단거리가 나았다. 초등학교 때에는 반에서 간신히 3등 정도를 했다. 체력장을 할 때면 잘하는 종목에만 치중할 뿐 가장 못했던 오래달리기는 체질이 아니라며 건성건성했다. 나 뿐만이 아니었다. 모두의 관심은 100미터 달리기였다. 100미터 달리기가 빠르면 반 대표로 계주에 나갈 수 있었고, 계주에 나간다는 것은 그당시 남자애들에게는 최고의 영예였다. 빠르다, 라는 말이 잘한다, 라는 말보다 우위를 점했던 어떤 짧은 시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날, 달려본 적 없이 어영부영 서른 중반을 훌쩍 넘어 오랜 빚을 진 사람처럼 이젠 좀 뛰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심 기대가 됐다. 여지껏 오래 뛸 수 없던 내가 오래 뛸 수 있게 된다면, 그건 꽤 멋있어 지는 것 아닌가, 싶었다.


달리기는 심하게 정직해

아. 어쩌면 네게 영향 받은 것이었을까. 바로 누워 바둥바둥거리다가 있는 힘껏 용을 써서 몸을 뒤집어낸 네가 대견해서였을까. 아빠는 한번도 관심없던 달리기에 눈을 떠서 이번주만 밖에 나가 세 번을 뛰어봤어. 거리는 5,000미터, 즉 5킬로미터야. 짧은 것 같지만 걸어봐도 짧지 않은 거리이고, 짧은 것 같지만 뛰어보면 너무나 먼 거리였어. 달리기가 처음인 아빠에겐.


사람마다 다르지만 아빠는 뛰자마자 1분도 되지 않아 옆꾸리가 쑤시고 숨이 가빠오면서 걷는 거나 다를 바 없는 속력으로 헥헥대며 천변을 돌았어. 느려도 걷진 말자, 느려도 걷진 말자, 그것만 해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달려갔는데 5킬로미터는 처음 뛴 아빠에겐 너무나 먼 거리더라. 4킬로미터를 넘어섰을 때 하나 깨달았던 건, 달릴 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어.


처음이니 지금부턴 걸어갈까, 애초 5킬로미터를 뛰는게 무리인 것 아닐까, 운동화가 러닝화가 아니어서 그런걸까, 별별 생각을 다하게 되는데 그게 결국 몸이 힘들어서 나도 몰래 타협점을 찾는 거거든. 지금 내가 너무 힘드니까 지금 내가 당장 멈출 만한 정당한 이유를 찾고 있는 건데, 그것만 안해도 끝까지 달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 느려도 괜찮으니 숨만 고르자, 느려도 괜찮으니 고개만 들자, 느려도 괜찮으니 가슴을 펴자고 생각하니 어느순간 목표했던 5킬로미터 지점에 도착하더라.

뛰었지만 걷는 속도였다고 고백한다.


단 5킬로미터였고, 단 30분 남짓의 달리기일 뿐이었는데, 아빠는 최근의 그 무엇보다 달리기가 힘들었어. 사실 처음 하는 일, 몸이 힘든 일은 이렇게 반드시 챌린지를 주는데, 오히려 그래서 이 별거 아닌 달리기가 사랑받나 싶어. 처음 5킬로미터를 뛰고 다음날 5킬로미터를 다시 뛰었을 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더욱 많이 들었는데 첫날 포기하지 않은 성공보수를 받은 건가 싶기도 해.  


이제 갓 달려본 아빠가 언제까지 몇 번을 더 뛰어볼진 아직 잘 모르겠어. 하지만 산에 가듯 천변을 따라 뛰는 일이 습관이 되고, 제법 먼 거리까지 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건 참 멋진 사람이겠다 싶어. 5킬로미터를 뛰기 시작해 수십킬로미터를 뛸 수 있게 되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연습을 이어갔단 뜻일 테니까. 속임수 하나 없이 일분일초 공을 들여 이뤄냈단 뜻일 테니까. ♣


새 장난감에 꽤 만족해주신다.

이번주 봄이는

젖병을 제 손으로 들고 먹고, 쉬이 몸을 뒤집으나 앞으로 전진하며 기진 못한다. 엎드려 양팔을 휘저으며 방향전환에 능한데 앞으로 기진 못해 두손으로 매트를 팡팡 치며 짜증을 낸다. 잠이 많이 줄었고 표정이 다양하여 간난쟁이 시절이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이번주 엄마는

이유식을 시작하시어 손톱만한 수저에 미음 같은 걸 담아 봄이 입에 넣어주신다. 연신 잘먹는다 칭찬하며 웃고 있지만, 먹이는게 보통 일이 아닌 것으로 사료된다. 빠르게 수저를 피하는 봄이의 동작을 예측해 적시에 수저를 입에 넣는다. 조리원 동기들도 만나시고, 어린이집도 탐방하시며 제법 프로 엄마 같은 모습을 보여주신다.


이번주 아빠가 읽은 문장 

산에서 음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산 정상에서 마시는 술을 '정상주', 하산 길에 마시는 술을 '하산주'라 부르며 천하일미로 꼽기도 하는데, 심지어는 출발할 때부터 '출발주'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적당량의 음주는 혈액 순환을 좋게 하고 기분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다. 그 적당량이란 소주 한 잔, 막걸리 한 사발, 맥주 한 캔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천하기 불가능한 기준이며 위험이 산재해 있는 산에서는 딱 한 잔만으로도 돌이키지 못할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취기가 오를 정도의 음주는 멀쩡한 사람을 돈키호테로 변신시킨다.

- 정덕환, 등산이 내 몸을 망친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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