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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May 15. 2023

내가 젊은 꼰대가 되어간 과정

그들과의 관계성

 먼저 나의 소개를 해야겠다. 나는 한국인이고 일본 도쿄에 있는 모 사립대학에 19학번으로 입학하여, 지금은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학부 4학년 신분으로 연구실에 소속되어 있다. 우리 학교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과 비슷한 이공계 대학으로 이학부와 공학부가 주요 학부로 이루어진 대학이다(물론 우리 학교가 일본에서 카이스트와 포항공대와 같은 위치를 갖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꽤 높은 수준의 대학으로 학벌에는 나름 만족하고 있는 편이다). 어쩌다 유학을 오게 된 것인지, 도피유학은 아닌지 이것저것 의문이 많이 들겠지만, 그 이야기도 나중에 풀어보도록 하자.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면, 나는 현재 공학부 기계공학과 모 연구실에 소속되어 졸업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내 연구실 동기는 나 포함 총 7명이다. 여기서 한 명은 "가챠 조 ガチャ組"라고 불리는 학생인데, 성적 최하위권 학생으로 연구실 선택권이 없고 무작위로 배속되어 들어온 학생이다(각 연구실마다 한 명씩 배정된다). 나머지 6명 중 3명은 20학번 학생들이고 나머지 3명이 나와 같은 19학번 학생들이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이번 연도 우리 연구실은 20학번 동기들이 성적 1,2,3위를 이뤘다. 연구실 배정 스토리는 또 다른 에피소드로 풀어보려 한다. 물론 궁금해한다면 말이다.


 여기서 문제가 3명의 후배이자 동기가 된 애들과의 관계이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그렇다기엔, 대학을 늦게 들어왔어서 동기들이 항상 나보다 어렸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입학 당시, 또래 일본인들과 이야기해본 적이 없기에 일본어 회화가 매우 서툴렀고 말이 어눌하다 보니 원래 나이보다 어려 보이게 됐고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되면 나이 상관없이 반말을 하는 문화이기에 호칭의 문제도 없고 나름 재밌게 잘 지내왔다. 그러나, 친구가 되기 어려운 건 나이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기본 성향 문제였다.


 세명의 20학번 동기 중에 두 명은 축구부 출신으로 원래부터 사이가 좋은 친구사이이다. 그 둘은 소위 '인싸' 느낌의 친구들로 자기네들끼리의 커뮤니티가 두텁고, 나를 포함 다른 동기들끼리 뭉쳐지려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실 이 것만으론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꼭 다 같이 좋게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단체 생활에는 규칙이라는 게 있는 법! 우리는 같은 4학년 연구생(이하 B4)으로 다 같이 담당하는 업무가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단체 회의 날은 시작 시간보다 일찍 와서 회의 준비를 해야 하고, 초창기에 선배로부터 소위말하는 '잡일'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은 이런 일들을 정말 잡일이라고 생각하고 참여하지 않았다. 나와 나머지 동기들이 세팅해 놓은 회의실에 시간 맞춰 들어와서 앉았고, 일손이 필요하다는 선배들의 연락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미디어에서 그려내는 MZ세대의 모습인 줄 알았던 에어팟을 끼고 있는 모습과 연구실이 동아리방인 것 마냥 축구부 친구들을 데려와서 수다 떠는 모습까지 이해가 되지 않게 되면서 나는 점점 그들과 동떨어진 옛날사람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교수님을 보고, 그 생각은 자격지심으로 이어졌다. '내가 저 친구들보다 성적이 낮아서 잡일은 내가 해야 되는 것이고 나는 여기서 주류가 아니구나'라고 말이다. 나는 저 친구들처럼 자유자재로 경어를 구사할 수 없었고, 시험을 보기 위해 꾸역꾸역 한자 그대로 머릿속에 집어넣은 용어들의 음독을 정확히 기억하여 말할 수 없었다.


 일본 생활 7년 차, 나름대로 일본어에 자신감이 붙어있었지만 연구실에 들어온 지 2주 만에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커다란 벽을 마주했다.


캠퍼스안에 있는 벚꽃이다. 일본에서 벚꽃은 입학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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