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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즈 May 17. 2023

상사의 선물이란?

주인님이 도비에게 영장제를 주셨어요...!

 저번 에피소드에서 조교 선생님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일본에서 대학 조교란, 박사 학위를 소지한 포스트닥터(*postdoc)인 셈이다. 흔히 대학원생들이 하는 수업 보조는 TA라고 한다. 한국이나 다른 학교는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만, 우리 학교에서는 조교를 데리고 있는 교수님은 꽤 드문 편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만 일본에서는 조교가 되면 대학 소속 교원이 되는 것이고 그때부터 호칭이 '센세(선생님)'으로 바뀐다. 어쨌든 우리 연구실은 17년을 이어온 아주 오래된,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연구실이고 피날레를 향해가는 연구실의 핸들을 잡고 있는 인물은 바로 조교 선생님, 즉 K상이다. 조교가 되면 센세로 바뀐다더니 왜 K상으로 불리는지 설명하자면 아직 나와 내 동기들을 제외한 선배들은 작년까지만 해도 같은 학생 신분으로 K상으로 불러오던 호칭을 갑자기 '센세'로 바꾸는 것이 간지러웠던 모양이다. 거기에 더불어 기술 자문으로 와 계시는 기업분이 K상과 같은 성을 쓰는 분이라 둘을 구분 짓기가 어려워 K상이라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편의상 앞으로 조교 선생님을 'K상'이라고 칭하겠다.


 K상은 나와 같은 연구실 6년 선배이다. K상의 첫인상은 푸근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순박한 시골쥐 같은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도쿄로 유학온 내게 수도에서 수도로 유학을 온 것이냐면서 신기해하던 모습이 그런 인상을 더더욱 짙게 하였다. 실제로 그는 본인이 외딴 시골동네 출신이고 그런 것에 자격지심이 있다고 하였다. 아무렇지 않게 자격지심이 있다고 말하는 그가 오히려 나는 속이 단단한 사람으로 보였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는다면 남들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게 되는 법이니까. 그는 그의 자격지심을 아무렇지 않게 내보였고 그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자격지심으로 보이지 않았다.


 K상의 대단한 멘탈을 증명해 주는 것은 또 있다. 우리 연구실에서 실험실과 박사실, 교수실을 똑 때고 남은 작은 공간에 중앙에 커다란 테이블이 있어 B4(학부연구생) 두 명이 쓰고 있고, 싱크대와 선반 냉장고가 마련되어 있다. 요리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긴 했지만, 상자 속에서 버너를 꺼내고 남들이 일하고 있는 테이블에 도마와 칼을 꺼내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하는 것은 꽤나 주위 시선이 신경 쓰이는 작업이다. K상은 그곳에서 요리를 해 먹는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신기해서 몇 명이서 대놓고 구경하기도 했다. 서툴지만 익숙한듯한 손놀림으로 뚝딱뚝딱 닭고기 우동를 끓인 그는 여기서 요리를 해 먹는 본인이 멘탈이 참 강한 사람이라고 언급하며 우동 그릇을 들고 유유히 박사실로 들어갔다. 그렇다. 그는 이상한멋있는 사람이다.


 나는 교수님 하고 연구에 관한 얘기를 한 기억이 거의 없다. 연구 테마를 고르라는 교수님의 단체 메일에는 K상과 상담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처음부터 K상과 상의하여 테마를 정했고 그 결론을 교수님에게 보고한 것이 전부이다. 그 이후로 실험 계획, 결과 보고 등등 모든 과정을 K상과 상의하였고 어려운 교수님보다 조금은 편한 K상과 하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본 연구를 위한 예비 실험들이 끝이 났고 본 연구의 진행 방향을 상담하기 위해 아침 9시에 K상과 미팅을 하게 되었다. 매우 저녁형 인간인 나에게 아침 9시란 얼굴이 잔뜩 부어있는 시간이었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나에게 요즘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요즘 피곤하다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K상은 그럴 때는 비타민이 최고라며 비타민과 함께 먹으면 효과가 끝내준다면서 서랍 속에서 종합 영양제 한통을 나에게 내밀었다. 선물 받은 거라면서 별로 비싼 것은 아니지만 효과가 좋다면서 말이다. 영양제는 투박한 갈색 유리병 속에 3분의 2쯤 남아있었다. 이 투박한 유리병과 본인이 먹던걸 건네주었다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순박한 게 딱 K상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훈훈해지려는 찰나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더 일하라는 건가...?'


그저 혼자 웃자고 하는 생각이다. 주인님이 도비에게 영양제를 주셨지만 도비는 자유이지 않다... 영장제도받았으니 체력 핑계 대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이제 도망 못 간다.

K상에게서 받은 영양제. 열심히 먹고 강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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