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치 작은 소리와도 같았다. 때로는 진동처럼 조금씩 느껴지는 작은 움직임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한 때는 큰 파도와 같은 사람이었다. 파도에게는 무엇이든 집어삼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그 힘 때문에, 파도는 꽤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다. 나는 파도의 아름다움 때문에 파도 같은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파도의 강력한 힘을 감당할 힘이 없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좀 더 고요하고 작은 울림의 사람이 되는 것은 나에게 한없이 넓고 깊은 평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주변의 작은 것들로부터 크게 멀어지지 않고 그것들과 소중한 관계가 되어가는 과정은 파도의 그것보다도 더욱더 아름다웠다. 무언가를 크게 포기하지 않고도 이처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큰 파도는 나에게 있어 정말이지 아름다운 존재였지만, 나는 어쩌면 잔물결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결혼하고 부산에 오고 나서는 조금 더 여유롭게 삶을 꾸려나갔다. 주 3일 정도의 직장과 크게 욕심부리지 않은 살림, 만나면 기분 좋은 몇몇 친구들, 무엇보다도 가족이 내가 가진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었다. 진심으로, 이 삶이 즐겁다. 항상 뭔가 이뤄내야 하고, 결과가 과정보다 중요했던 이전의 삶을 다시 살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이라고 해서 그 삶이 초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원하는 만큼을 얻고,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나와 진정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스트레스받지 않는 인간관계를 쌓는 것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줄곧 생각한다. 이 삶의 영역에서라면 그 어떤 힘듦과 어려움을 만나도 조금씩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용기가 생길 것 같다고. 그리고 한편으로 또 생각한다. 이 영역에서 누구를 만나게 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기로, 이 모든 것에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