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안녕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위험한 도전을 하자.
내게 중요한 욕구는 '심리적 안정감'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행복을 위해 마음 안정을 우선으로 삼기 시작했다.
무언가 선택을 할 때도 심리 안정을 고려하게 되었다.
내 마음의 안녕을 해칠 거라 판단되는 일을 만나면,
피했다.
이런 행동은 나를 챙기는 일이며,
지혜로운 태도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생각은 바뀌었다.
끝없는 안정, 안전, 안녕의 추구가
내 안녕을 해치고 있음을 조금씩 깨달았다.
정서 안녕을 지키겠다고
모든 위험을 피해 다니는 것은
결국 내 안녕을 해치는 일이 된다.
그것은 마치,
부상을 예방하려고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근육이 약해져 결국 부상을 쉽게 입는 몸이 될 테니 말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끝없는 안녕의 추구는 마음을 허약하게 만든다.
세상도 편안함을 향해서만 질주하고 있다.
의자는 갈수록 편안해지고,
움직일 일은 갈수록 줄어든다.
걷고 달리는 수고를 자전거가 덜어 주었고,
자전거는 자동차로 대체되었다.
이제는 운전까지 손 놓아도 될 세상으로 가고 있다.
올해 흥미롭게 읽은 책이 있다.
'편안함에 습격'이다.
이 책에는 편안함의 추구가 몸 건강뿐 아니라,
정서 건강까지 해치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먹을 것을 사냥하거나 날마다 고된 이동을 하거나 혹독한 배고픔에 시달리거나 거친 자연에 맞서는 따위의 불편함을 맞닥뜨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신 편안함에 따르는 부작용을 맞이하게 되었다. 장기간에 걸친 육체적·정신적 건강 문제들 말이다. :: 편안함의 습격, 마이클 이스터
진정으로 마음이 튼튼하길 바란다면,
위험, 시련, 고난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진해서 선택해야 한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나는,
조금씩 도전을 하고 있다.
'편안함의 습격'에서는 성공확률이 50%인,
힘든 도전을 하라고 조언한다.
단,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원칙이 이것 하나면 너무 과격하다 싶어서
난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
죽지 않아야 하고, 다치지 않아야 한다.
다치게 되면 하고 싶은 도전도 못하게 될 테니 말이다.
고민을 하다가 책에서 언급한 '러킹'을 해보기로 했다.
무거운 가방을 지고 산을 오르는 것을 러킹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트레일 러닝을 접목시켰다.
10kg 무게의 가방을 지고 산을 달려서 올랐다.
딱 30분을 달렸는데,
욕을 잊고 살던 내 혀에서,
자연스레 욕이 새어 나올 만큼 힘들었다.
하고 나서 기분은 정말 좋았다.
왠지 도전 정신이 높아진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신체 단련은 체력 향상에만 그치지 않고,
마음의 근력도 키워주어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안전지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위험지대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 도전거리도 생각해 봤다.
종목은 최근에 다시 시작한 수영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수영을 하러 가는데,
너무 오랜만에서 해서인지,
불과 50m 헤엄도 힘들게 느껴졌다.
50m가 힘들다니!
100m는 많이 힘들겠지?
200m는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300m를 도전해 볼 생각이다.
성공확률이 20%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괜찮다.
실내 수영장에 사람이 많으니,
죽지는 않을 것이고,
옆 레인 사람의 발차기만 조심한다면.
다칠 위험도 적다.
달콤한 실패를 맛볼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렌다.
언제 할까?
내일 하자.
내일의 실패를 위해,
어서 자자.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