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꾼다는 것

무엇으로 어디서든 살아가겠지만

by 식목제

# 1 _ 어린것들이 태동하는 봄


봄이 좋다. 정확히 말하자면 겨울 끝자락의 한기를 뚫고 이른 봄볕에 어김없이 고개를 내미는 새싹들을 보는 게 나는 즐겁다. 눈이 흐려져 그 빛깔이 예전처럼 선명하게 나를 유혹하지는 않게 됐지만, 그럼에도 그 여리고 예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마음이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곧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면 녀석들은 무성하고 짙푸른 자태를 뽐내게 되리라. 아내는 내가 5월에 태어나서 봄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작고 어린것들을 사랑하고 동물을 좋아하는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가? 잘 모르겠다.

봄의 절정인 5월 달력을 보면 무슨 날들이 참 많다. 그 첫날 노동절을(난 근로자의 날이라는 말보다 이 말이 더 좋더라)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석가탄신일,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이 줄줄이 배치돼 있다. 그에 더해 유권자의 날과 세계인의 날도 있고, 5·18민주화운동기념일도 빼놓을 수 없다. 눈에 띄는 것은 5월에 가족과 관련된 날이 집중돼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이 달을 ‘가정의 달’이라고도 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학교에서 달마다 무슨 행사가 참 많았다. 이를테면 6월이면 반공의식 고취를 위한 글짓기 대회나 포스터 그리기 대회가 열렸고,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단상 위에서 애국심을 고취하는 연사들의 열띤 웅변이 카랑카랑하게 울려 퍼지곤 했다.


그렇다면 5월은? 한 달 내내 번갈아 가며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어린이날 노래),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어머니 마음),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스승의 노래)가 교실마다 울려 퍼지고, 여느 달과 마찬가지로 글짓기와 포스터 그리기 등 각종 대회가 줄을 이었다. 그래서인지 무슨 상장도 참 많이 줬는데, 말 그대로 상장 공화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2 _ 열 살짜리 나의 꿈은


지금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1981년 5월에 열렸던 교내 시화전 때 상장을 받은 일이다. 5월 가정의 달을 주제로 시를 쓰는 것이었는데, 당시 나는 친구, 가족 등을 매 연마다 등장시키며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라는 시를 썼더랬다. 웃기는 것은 담임선생님이 내 시를 보고는 맨 마지막 연에 ‘대통령’을 등장시켜서 시를 마무리하라고 시킨 일이다. 그렇게 해서 가족들 얼굴과 당시 대통령 얼굴까지 그려 넣은 시화가 1년 내내 교실 뒤편에 걸려 있게 되었다.


그때 내 부모님은 연신 나를 칭찬하며 장차 커서 육군사관학교에 가라고 말씀하시곤 했고, 심지어는 정치인이 되라고도 말씀하셨다. 열 살짜리 아이에게 주문하는 꿈 치고는 좀 어처구니없는 것이었지만, 난 그때부터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장래희망을 발표할 때마다 부모님의 주문을 고스란히 옮겨 말했다.


하지만 사실 내 꿈은 형만큼 공부를 잘하는 것, 형만큼 만화를 잘 그리는 것, 형만큼 자전거를 잘 타는 것, 형만큼 공을 멀리 던지는 것이었다. 그게 열 살짜리 나의 꿈이었다.


# 3 _ 새로 나는 싹은 그저 열심히 자랄 뿐


나는 형이 만화가가 될 줄 알았다. 따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는데 캐릭터를 구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스토리를 짜는 것도 대단했다. 누런 종이의 스프링 연습장에 직접 제목을 정하고 대사를 써넣은 만화책을 만든 적도 있다. 그걸 학교에 가져가 친구들에게 자랑하면 거짓말하지 말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형은 법대를 갔다. 형은 아버지의 실패한 꿈이었고, 결국 사법연수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형이 가장 빛났던 때는 사법고시에 ‘최종’ 실패하고, 디자인 공부를 해 어느 회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지내던 몇 년이다. 그때 형은 알코올중독에 가까웠던 술도 줄이고, 매일 수영으로 몸도 다지며 일에 매진했고, 거기서 아내 될 사람까지 만났다. 하지만 그 시기는 너무 짧았다.


어렸을 적 형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꿈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저 만화 그리는 게 좋고, 소설 읽는 게 좋은 어린 녀석이었을 게다. 나는 어떨까? 나는 어른들이 말하는 꿈이 없는 게 늘 불안했고 그것 때문에 오랜 시간 자괴감에 시달렸다. 부모님의 꿈을 동어 반복하던 시기를 지났을 때, 난 막연히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꿈인지 자신할 수 없었고, 누군가 또 어른이 되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화를 그리는 게 좋았던 소년이 그저 그렇게 열심히 자랐다면, 시를 쓰고 싶었던 아이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자랐다면 어땠을까?


# 4 _ 애초에 실패할 꿈을 꾸는 사람은 없다


형은 어렸을 때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가상현실’에 대해 가끔 얘기하곤 했다. 이러저러한 것들을 마치 현실인 것처럼 체험하는 장치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눈이 동그래져서 정말 그런 게 있다면 대단하겠다면서 물개 박수를 쳤던 기억이 난다.


형이 형답게 자랐다면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되었을 거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마음만 좀 고쳐먹었다면, 글 잘 쓰고 그림 잘 그리는 멋쟁이 변호사가 되었을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좀 고집을 부려서 자기 뜻대로 소설가가 되거나 만화가가 되었을 수도 있고, 또 그도 아니면 명문대를 나왔으니 어렵지 않게(당시에는 그랬다) 괜찮은 회사에 들어가 지금쯤 중견 간부가 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게다.


삶의 결과만을 가지고 말한다면(그런 게 가능하다고 믿지 않지만) 성공한 인생도 있고 실패한 인생도 있다. 하지만 꿈이란 건 그런 게 아니지 않을까. 애초에 실패할 꿈을 꾸거나 성공할 꿈을 꾸는 사람은 없다.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하지만 그 꿈이 마음을 만들고, 영혼을 만들고, 삶을 만들어 결국 현실 안에서 온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든다. 점점 아이들에게 진짜 꿈을 꾸지 못하게 만드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니 어쩌면 형을 비롯한 우리 세대도 진짜 꿈을 꾸지 못한 채 자라난 건 아닌지, 그래서 우리 아이들까지 그렇게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서글픈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무엇으로 어디서든 살아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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