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차를 보면 타고 싶어진다

기찻길, 유년의 뜰

by 식목제

# 1 _ 기찻길, 유년의 뜰

이곳 고성과 멀지 않은 속초에도 수년 안에 다른 세상과 연결된 기찻길이 생긴다고 한다. 또 속초와 고성 제진까지를 잇는 기찻길도. 내심 기뻤다. 난 기찻길을 좋아한다. 예전에 서울 동교동 로터리 인근에 있는 출판사를 다닌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경의선 숲길 공원’의 한 구간이 놓여 있다. 가끔 이 숲길 공원 옆을 지나다 보면 어린 시절 생각이 나곤 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이 구간의 철로를 따라 기차가 다닐 때 신수동 기찻길 옆 동네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니까 40년도 넘은 일이다.


이 기찻길을 중심으로 남아 있는 기억도 많다. 이를테면 기찻길 옆 낡은 파라솔 아래에서 연탄불에 국자를 얹어 설탕과 소다를 녹여 ‘뽑기’(달고나)를 하던 일(실은 구경만 할 때가 더 많았지만), 철로에 귀를 대고 진동을 느끼며 기차가 오는 걸 짐작하던 일, 지금 생각해 보면 위험천만한 짓이지만 작은 돌멩이 하나를 철로에 얹어두고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일, 철로 위를 외나무다리 건너듯 조심스레 걸으며 누가 오래 버티나 시합하던 일까지…. 기찻길이 일종의 놀이터였던 셈인데, 거기 가서 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는 어른들도 없었다. 하긴 어디 가서 놀라든가 말라든가 신경 쓸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기찻길은 놀이터이기도 했지만,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했다. 형들(형과 사촌 형들)과 먼 곳으로 모험을 떠나겠다며 한겨울에 철로를 따라 무작정 걷던 일, 동네 아이들과 철길 너머 옆 동네로 원정을 가 돌멩이를 던지며 떼로 싸움을 벌이던 일이 생각난다. 그렇게 기찻길에서 뒹굴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돼 해질 녘에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혼도 많이 났다. 또 기찻길은 기다림의 공간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늘 저녁 늦게야 집에 돌아오던 아버지를 마중하러 동네 앞 건널목에 나가곤 했기 때문이다. 어둑어둑한 건널목 너머로 허깨비를 가리키듯 손짓을 하며 “아빠다” 하고 외치면 번번이 다른 사람이라 실망하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나는 건널목에 나가는 게 좋았다. ‘땡땡땡’ 종소리가 울리고 차단기가 내려가면 곧 기차가 지나가리라는 기대에 설렜다. 언젠가 기차를 타보고 싶었다. 기차를 타면, 너무 추워 되돌아왔던 형들과의 모험 길, 그 길 너머 먼 곳으로 나를 데려갈 것만 같았다. 그것이 여섯 살, 기찻길에서 보낸 내 유년의 기억이다.


그로부터 2년 뒤 나는 처음으로 기차를 탔다. 신수동을 떠나 군산에서 지내던 시절, 어느 날 우리는 도망치듯 이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최종 목적지는 춘천이었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 이리행 기차뿐이다. 비록 내가 꿈꾸던 모험은 아니었더라도 그렇게 기차를 타고 싶다던 소망을 이룬 것이다.

# 2 _ 비둘기처럼 다정하지는 않지만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라는 가사의 노래가 있다.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다. 비둘기를 도시의 혐오 조류쯤으로 여기는 요즘이야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예전에는 이 녀석을 사랑과 평화의 상징으로 쓰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는 탈것에도 그 이름을 붙였는데, 바로 완행열차 ‘비둘기호’다. 1990년대까지 서울에서 젊은 날을 보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춘선 비둘기호를 타 봤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비둘기호를 탄다면 아마 경악을 금치 못할 텐데, 그건 바로 열악한 환경 때문이다. 지하철에서나 볼 법한 기다란 일자형 좌석이 양쪽에 있고(당연히 지정 좌석은 없다), 냉방시설이라고는 천장에 붙은 낡은 선풍기 몇 대가 고작이며, 화장실에서는 오직 소변만 볼 수 있는데 달리는 속도를 이용해 바로 철로에 오물을 뿌리는 방식이라서 ‘정차 중에는 사용 금지’라는 수칙이 붙어 있었다. 그것뿐이 아니다. 이런 풍경을 상상해 보자.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고스톱을 치며 술판을 벌이는 이들, 창문을 열고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는 이들, 객실 간 통로 난간에 매달려 달리는 기차의 바람을 만끽하는 이들. 지금은 생각조차 하기 어렵지만, 당시 비둘기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이리행 이후 다시 기차를 타게 된 것이 바로 이 경춘선 비둘기호다. 다만 MT를 가며 젊음을 만끽하던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반대 방향, 그러니까 춘천에서 서울로 가는 비둘기호를 탔다는 것이다. 나는 고향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단 한 번도 이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딱히 마음속에 제2의 고향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튼 설이나 추석이 되면, 나는 보통의 귀성 행렬과 정반대쪽으로 움직였다. 막상 서울에 도착하고 나면, 언제 서울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냐는 듯이 낯설고, 어지럽고,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서울에 가는 게 좋았다. 기차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차를 타기 전 철로에서 나는 냄새, 기차가 달릴 때 느껴지는 특유의 소음과 진동, 창문을 열면 얼굴에 와 닿던 바람, 운이 좋으면 얻어먹을 수 있었던 삶은 달걀, 그 모든 게 설레었다.


내게 ‘기차’나 ‘기찻길’이 주는 이미지는 ‘다른 세상으로 이어진 길’이다. 서울행 경춘선은 다른 세상으로 이어져 있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달리는 기차 자체가 가져다주던 낯선 공기, 그 달뜬 냄새를 기억한다. 기찻길 저쪽 끝에 무엇이 있건 간에 이미 그 공간 자체가 다른 세상을 만들어 냈고, 심지어는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시간으로 나를 인도할 것만 같은 몽상마저 들었다. 그러니 내가 어린 시절 꿈꾼 모험은 저기 어딘가에 있는 다른 세상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길을 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철로 위를 걸으면서도 그 끝 어딘가에 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비둘기처럼 다정하지만은 않은, 고향 아닌 고향으로 가던 그 기차가 내게 모험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 3 _ 나는 기차를 보면 타고 싶어진다


문지 시인선 첫 번째를 장식한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의 표지 글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동기야 어떻든 일단 있는 그대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 그 사랑은 다른 사람, 다른 사물에로 확대된다. (…) 까치가 그저 하나의 새가 아니라 귀족적인 옷을 입고 있는 새라는 것도 발견하게 되고, 늘 무심히 지나치던 여자가 화장이나 옷차림에 과장이 없는, 다시 말해 낭비가 없는 여자라는 사실도 새로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사는 일이 바빠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기차를 타고 가는 모험 길이 설렘을 가져다주는 힘은 익숙한 사물이나 사태를 다르게 보고 낯설게 보도록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낯설게 보기는 사실 정체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약간은 편협하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응시한다는 데 있다. 모험을 떠나며 우리는 스스로 낯선 자가 되고, 주변의 모든 것을 낯설게 바라보며 세상을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그저 그렇게 바라보던 저 사람과 이 사물을 새로 알아 가느라 바빠지고, 그로 인해 삶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여행을 한다는 것, 모험을 감행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세상으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익숙한 세상으로 낯설게 돌아오기 위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는 모험에서 돌아오면 이전과 달라진 시야와 공기를 경험한다.


나는 기차를 보면 ‘타고’ 싶어진다. ‘떠나고’ 싶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돌아올 것이므로. 하지만 돌아온 자리가 여전히 남루할지라도 삶의 한 올 한 올을 다시 볼 수 있게 되기를, 그리하여 사는 일이 지루하고 지겨운 것이 아니라 새로이 바빠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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