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아닌 이름을 위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

by 식목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 / 온다프레스

# 1 _ 고성에서 만난 온다프레스


고성에서 살기로 하면서 뜬금없이 고성에 출판사가 있는지 검색해 본 적이 있다. 재미로 한 거였지 정말로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온다프레스’라는 출판사가 있다는 것이다. 적잖이 놀랐고 바로 어떤 책을 내는 곳인지, 출판사를 꾸려 가는 그이는 어떤 사연으로 그곳에 간 것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이후로 지금까지 그이가 내는 책을 지켜보았다. 나하고는 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근 20년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면서도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밥벌이로 일을 했다. 하지만 그이는 달랐다. 책을 내는 목록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살기로 한 고성에 그런 출판인이 있다는 게 내심 좋았다. 물론 그이에게도 출판이 밥벌이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남다른 애정을 갖고 하는 밥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2 _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신간 텀블벅 소식을 접하고 바로 신청했다.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트위터를 일찍이 본 적은 있는데, 난 세세히 읽지 않고 바로 닫아버리곤 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묶여 나온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이다. 생명의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다. 7번 국도에서 하루걸러 한 번씩 로드킬당한 생명체들을 볼 때마다, 난 온몸에 힘이 들어가며 식은땀이 흐르곤 한다. 우리 인간들도 그렇게 로드킬당한다. 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로드킬당한 생명들과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그들에게 죽음이 닥칠 수밖에 없게 만든 자들, 그런 자들이 만든 시스템들은 그들의 죽음을 그저 ‘재수없는’ 일로 치부해버린다. 예전 북한산 어느 밑에서 택시운전사가 고양이를 치어 죽이고는 ‘재수없다’고 말하는 것을 목도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부주의한 운전으로, 다른 생명체를 고려하지 않은 도로 환경으로, 그 고양이는 속절없이 죽었지만, 그건 재수없는 일일 뿐이었다. 오늘 죽었을 어느 노동자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재수없는 사건의 대상으로 치부된다. 분명한 건, 방금 전까지 그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는 사실이다.


# 3 _ 모든 것이 돈으로 보이면 사람은 보이지 않는 법


고성으로 와서 내가 처음 한 일은 목재 배달 일이었다. 농사를 짓고 싶었지만 당장은 그것으로 벌이가 되지 않았다. 말은 목재 배달이지만, 이른바 잡다한 ‘노역’을 매일 실행해야 하는 자리였다.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다. 사장은 커다란 대못이 자신의 손가락을 관통했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을 일종의 훈장처럼 여기는 사람이었고, 바로 내일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타이어를 장착한 화물 트럭에 잔뜩 과적을 시킨 채 배달을 나가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특별히 상식 밖의 인간이라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그가 하는 행동은 아주 ‘상식적인’ 일이었다. 이곳에서 손가락이 절단된 채, 몸 한구석에 철심을 박은 채 일하는 노동자들을 적잖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1년 1개월을 일한 뒤 그만두었다. 차사고 때문이었다. 배달 트럭을 몰고 나가다가 사고를 낸 것이다. 사고 현장에 온 사장은 계속 차 수리비를 걱정했다. 내가 괜찮은지는 전혀 묻지 않았다. 물론 다행히도 난 괜찮았지만, 내가 괜찮지 않았어도 그는 병원비를 물어줘야 하는 문제만 걱정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보이면, 사람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 4 _ 발딛고 사는 많은 것들에 누군가의 피가 묻어 있다


출판사들이 잔뜩 모여 있는 합정역 사거리가 지금과 같이 고층 빌딩들로 채워진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다. 개발이 시작되고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일 때, 그곳에서 타워크레인 전복 사고로 노동자 둘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고, 혹 그때 이 단신 기사를 접한 사람이라 해도 금세 잊었을 것이다. 발 딛고 사는 많은 것들 속에 누군가의 피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지 못하고, 설령 안다 해도 곧 잊는다.

책을 받아보고는, 표지를 한가득 채운 숫자가 좀 서글펐다. 우리는, 노동자들은 그저 그런 숫자들 가운데 하나로 살아가다 숫자들 가운데 하나로 죽는다. 목재소에서 일할 때, 내 이름을 물어준 사람 아무도 없었지만, 나 역시 그들 이름을 묻지 않았다. 나도, 그이들도 그저 이 바닥에서 일하는 일꾼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그 숫자들 가운데 하나. 일꾼들을 부리는 자들은 곧잘 이렇게 말하곤 했다. “돈이 없지 사람이 없냐. 일할 사람은 많아.” 2146명이 사라져도 2147명째 일꾼은 또 있다는 얘기였다. 그들의 자본주의놀이는 참으로 공고해 보였다.


# 5 _ 기억한다는 것 너머


그럼에도 ‘기억’한다는 의미에서 이 책은 남다르다. 기억하지 않는 자들보다 기억하는 자들이 더 많아질 때, 그저 기억하기만 하는 자들보다 그 기억을 변화의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이 더 많아질 때, 미약하게나마 세상은 바뀔 거라고 ‘믿고 싶다.’ 숫자가 아닌 이름이 되어갈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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