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란스럽고도 평범한 생존 신고
알람이 울린다. 오전 6시 30분. 눈을 뜬다. 심장이 조금 빨리 뛴다. 오늘 해야 할 업무와 마주칠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명치끝이 살짝 묵직하다.
1년 전의 나였다면 이 기분을 '재난'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불을 걷어찬다. "아, 귀찮아. 더 자고 싶다." 재난이 아니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기상 후유증'으로 정의 내린다. 이름표를 바꿔 달자 공포가 짜증으로, 짜증이 다시 무덤덤함으로 바뀐다. 습관처럼 부엌으로 가서 물 한 컵을 따르고 약을 털어 넣는다. 처음엔 이 약이 나를 '환자'로 만드는 낙인 같아서 싫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건 내 마음의 영양제이자, 내 영혼의 갑옷이다.
남들이 모닝커피로 정신을 깨우듯, 나는 이 작은 알약으로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을 충전한다. 약통을 보며 생각한다. '3년 전 오늘, 나는 죽고 싶었지.' 3년 전 오늘, 나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20시간을 자고도 피곤했고, 콜라만 마시며 하루를 보냈다. 누가 나를 좀 죽여주지 않을까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약을 먹고, 커피를 내리고, 출근 준비를 한다.
많이 왔네. 거울을 본다. 퀭한 눈, 부스스한 머리.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내 안에는 열등감이 꿈틀대고, 여전히 나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이며, 여전히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겁쟁이다. 하지만 나는 씻고, 옷을 입고, 머리를 말린다. 거울 속 나에게 말한다. "오늘도 잘 버텨보자." 현관문을 연다. 차가운 공기가 훅 끼쳐온다.
예전, 나는 병원 문을 열면서 "제발 나 좀 고쳐주세요"라고 빌었다. 지금, 나는 현관문을 열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일단 가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이것이 나의 변화다. 불안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불안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예전엔 "불안해서 못 해요"라고 문장을 끝맺었다면, 이제는 접속사 하나를 더 붙일 줄 알게 되었다.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하지만, 밥은 먹습니다.
불안하지만, 농담은 던집니다.
불안하지만, 사랑은 합니다.
불안하지만, 출근은 합니다.
불안하지만, 살아갑니다.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덜컹거리는 소음, 빽빽한 사람들. 가끔 숨이 찰 때도 있다. 그럴 땐 이어폰을 꽂고 심호흡을 한다. 3초를 세고 천천히 숨을 내쉰다. 그러면 지나간다. 터널이 끝나면 빛이 나오듯이. 창밖을 본다. 사람들이 걷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있다. 커피를 마시고 있다. 다들 각자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거겠지.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직장에 도착한다. 시끄러운 소리, 동료들의 키보드 소리, 전화벨 소리. 나는 다시 직장인의 가면을 쓴다. 예전엔 이 가면이 무거웠지만, 이제는 제법 내 피부처럼 편안하다. 아니, 어쩌면 이것도 나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가면이 아니라 그냥 또 다른 나.
업무를 한다. 점심시간, 동료와 밥을 먹는다. "요즘 어때요?" "괜찮아요." 예전 같았으면 거짓말이었을 말. 하지만 지금은 진심이다. 완벽하게 괜찮은 건 아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괜찮다. 버틸 만하다. 살아갈 만하다. 그 정도면 충분히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다. 오후 3시, 불안이 찾아온다.
퇴근 시간이 됐다. 가방을 챙긴다. 동료가 말한다. "수고하셨어요, 내일 봐요!" "네, 내일 봐요." 내일. 3년 전에는 내일이 무서웠다. 내일도 또 이렇게 힘들까 봐. 하지만 지금은 내일이 그렇게 무섭지 않다. 오늘을 버텼으니까. 내일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퇴근길, 편의점에 들른다. 아이스크림을 산다. 봄에도 샀던 그 아이스크림. 집에 와서 창문을 연다. 바람이 들어온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생각한다. '행복하네.'
크게 행복한 건 아니다. 그냥 조금, 평범하게, 일상적으로 행복하다. 하지만 3년 전에는 이것도 없었다. 이 평범한 행복조차. 그러니까 이게 회복이다. 밤이 됐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본다. 오늘도 살았다. 불안했지만, 출근했다. 힘들었지만, 웃었다. 무너질 뻔했지만, 다시 일어섰다. 오늘 하루도 버텼다.
누군가 나에게 "그래서 완치됐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아니요. 저는 평생 불안할 것 같아요." 하지만 덧붙일 것이다. "대신 저는 불안이랑 같이 사는 법을 배웠어요. 녀석이 짖어대도 밥은 챙겨 먹을 줄 알게 됐거든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당신의 불안은 당신이 잘못 살았다는 증거가 아니다. 당신이 그만큼 잘하고 싶었다는,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증거다. 그러니 부디 당신을 너무 미워하지 말기를. 넘어져도 괜찮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 쉬어가도 괜찮다. 약을 먹어도 좋고, 도망쳐도 좋고, 울어도 좋다. 중요한 건, 우리가 오늘 하루도 살아냈다는 사실이다.
1년 후의 나에게. 1년 후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여전히 불안할까? 아마 그럴 거야. 여전히 약을 먹고 있을까? 아마 그럴 거야. 하지만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져 있기를 바라.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행복하기를. 그리고 1년 후에도 여전히 출근하고 있기를.
나는 내일도 불안할 것이다. 또다시 열등감에 시달리고, 남을 질투하고, 미래를 걱정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일도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약을 먹고, 현관문을 나설 것이다. 뚜벅뚜벅. 나의 구두 굽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꽤 멋지게.
"다녀오겠습니다." 나의 출근은, 계속된다.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