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덩어리

불순한 동기, 진짜 결과

by 하루

나는 열등감 덩어리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참 열정적이다", "다재다능하다", "도전 정신이 강하다"라고 칭찬한다. 영상 편집도 하고, 브런치에 글도 쓰고,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는 내 모습을 보며 '갓생'을 산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나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나의 성실함은 고상한 꿈에서 나온 게 아니다. 나의 노력은 희망찬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남들보다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공포.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까 봐 느끼는 뼈저린 열등감. 그게 나를 움직인 진짜 연료였다. 누군가 작가로 데뷔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 글이 초라해 보여서 미친 듯이 자판을 두드렸다. 친구가 승진을 하거나 재테크로 성공했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불안에 떨며 서점에 가서 관련 책을 10권씩 사들였다. 나참, 왜 이렇게 사나. "와, 너 진짜 열심히 산다." 그 말 뒤에는 '그렇게 안 하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나의 지질한 민낯이 숨어 있었다.


나는 백조였다. 물 위에서는 우아하게 '갓생'을 사는 척했지만, 물밑에서는 열등감이라는 모터를 달고 미친 듯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가라앉지 않기 위해. 잊히지 않기 위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산 지 10년이 넘었다. 그 대가로 나는 '불안장애'라는 병을 얻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얻은 게 또 있다.


능력이다. 질투심에 시작한 영상 편집 덕분에 나는 내 생각을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열등감에 시작한 글쓰기 덕분에 지금 이렇게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뒤처지기 싫어서 공부했던 수많은 지식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능력 있는 나'를 만들었다.


병원에 다니며 나를 돌아보던 어느 날,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내 성취를 인정하지 못할까?' '왜 내 노력의 동기를 부끄러워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작은 불순했을지 몰라도 결과는 진짜였다. 열등감 때문에 시작했든, 질투 때문에 시작했든, 어쨌든 나는 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흘린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의 열등감은 나를 갉아먹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키웠다. 그것은 아주 독하고 매운 거름이었다. 이제 나는 나의 열등감을 긍정해 주기로 했다.


인정하자. 나는 남을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나는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나는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다. 그래서 뭐? 그 덕분에 나는 여기까지 왔다. 그 덕분에 나는 성장했다. 나비가 되기 전의 애벌레는 징그럽다. 하지만 그 징그러운 껍질을 찢고 나와야 날개가 생긴다. 나에게 열등감은 그런 껍질이었다. 예전에는 그 껍질 속에 숨어서 "나는 왜 이렇게 못났지" 하고 떨었다면, 이제는 그 껍질을 박차고 나와 날갯짓을 해보려 한다.


건강한 열등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남을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그래? 너도 했어? 그럼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외치며 따라가는 마음. 이제 나는 내 열등감의 방향을 바꾼다. 나를 찌르는 칼날이 아니라, 나를 밀어 올리는 프로펠러로. "저 사람 참 잘하네. 부럽다." 예전엔 여기서 끝났다. 그리고 자책했다.


지금은 문장 하나를 더 붙인다. "부럽다. 그러니까 나도 해봐야지. 나라고 못 할 거 없잖아?" 어제도 그랬다. SNS에서 동기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봤다. 순간 배가 아팠다. '나는 왜 아직도 브런치에서만 쓰고 있지?' 예전 같았으면 자책하고 끝났을 텐데, 어제는 달랐다. '그래, 부럽네. 그럼 나도 해야지.' 출판사 메일 주소를 검색했다.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참, 열등감도 쓸 데가 있네.


나는 여전히 열등감 덩어리다. 앞으로도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배 아파하며 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배 아픔이 나를 또 다른 세계로 데려다줄 거라는 걸. 나의 이 찌질하고 치열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그래, 나는 열등감으로 날아오르는 새다. 연료가 좀 독하면 어때. 멀리 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 하자품이 여기까지 왔다. 열등감을 연료 삼아. 완벽하지 않다. 동기도 불순하다. 하지만 날고 있다. 기왕 배 아픈 거, 더 높이 날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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