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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Aug 15. 2021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 제주 DAY 7 & 8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일몰을 만났다



Today's BGM

피터팬 컴플렉스 - 모닝콜 (feat. 프롬)

https://www.youtube.com/watch?v=6cqWVrkmiLU





정들었던 동쪽을 떠나 다시 제주 공항으로 돌아왔다. 숙소가 있는 서쪽 한림읍까지 가기 위해 택시에 올라탔다.


운전사 아저씨는 공무원 퇴직 이후에도 이 일이 재밌고 즐거워 지금까지 일하시고 계신단다.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있기에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택시 아저씨의 머나먼 조상님은 무려 600년 전 제주에 오셨다고 하시니, 아저씨는 그야말로 진짜 제주 토박이이신 셈이다. 다음에 다시 오면 제주 구경을 시켜주신다고 하셨다.

 


필름 카메라로 담은 김녕 해수욕장.



공항으로 오기 전엔 시간이 조금 남아 김녕 해수욕장에 잠시 들렀다.


별생각 없이 왔는데 웬걸! 커다랗고 하얀 풍력 발전기와 유독 푸르른 하늘, 그리고 에메랄드빛 바다까지 완벽한 풍경이었다. 모래마저 무척 하얗고 고왔다.


한참 동안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다. 이제껏 세화 해변이 가장 예쁜 줄 알았는데. 오늘부로 마음속 1순위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서쪽으로 넘어오니 선선한 가을 날씨는 온데간데없이 한여름처럼 쨍쨍하다. 해변가의 사람들은 어느덧 반팔을 입고 수영을 한다.


야자수가 우거진 이국적인 풍경에 꼭 머나먼 외국에 온 듯했다. 갑작스러운 무더위에 머리가 몽롱해졌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근처 스타벅스로 잠시 피신했다.


다들 우리와 같은 마음인지 이곳도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겨우 창가 자리에 잡고 주문을 했다.


제주 한정 메뉴라 주문한 제주 까망라떼와 바나나 푸라푸치노. 흑임자 맛이 나는 라떼는 꼬숩고 달달했고, 푸라푸치노는 딱 바나나 우유 맛이다. 익숙한 맛이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제격이다.






태양이 한풀 사그라들 즈음 밖으로 나와 근처 북 스테이 서점 <AVEC 아베끄>에 들렀다. 꽤 오래 쉬었는데도 걷다 보니 땀이 막 흐른다.


서점 주인분께 원래 이 동네가 이렇게 덥냐고 물으니, 오늘 날씨는 완전히 이상기후라고 하셨다. 11월에 이렇게 30도가 넘어간 적이 없단다. 서점 한 구석엔 선풍기가 열심히 뽈뽈 돌아가고 있었다.


12명의 시인과 소설가들이 첫사랑을 주제로 쓴 글을 묶은 <첫사랑과 O>라는 책을 사고 싶었지만 이제는 완전한 뚜벅이기에 짐이 될 것 같아 다시 내려놓았다.   


갑작스레 더워진 날 때문인지, 아니면 서울만큼이나 붐비는 인파 때문인지 벌써부터 몸이 무거웠다. 많이 기대했던 서쪽인데 생각보다 상업적이고 관광지 느낌이라 조금은 실망이다.


제주의 일곱 번째 날은 조금 일찍 마무리하고 숙소로 일찍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에겐 내일도 있으니까!




20분이나 기다려서 먹은 커스터드푸딩. 식감은 독특하고 캐릭터는 귀여웠지만 너무 사악한 가격.
제주에서 손꼽을 만큼 맛있었던 전복죽 & 보말 칼국수집, 바당길.



어딜 여행하든 항상 빼먹지 않고 서점을 들리는 나. 제주에서도 가보고 싶은 서점이 참 많았지만 혼자 여행하는 것이 아니기에 몇 군데만 들리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다 맞춰주시며 가고 싶은 곳 모두 다 가보자고 하셨다. 덕분에 의도치 않은 제주 서점 투어를 하고 있어 아주 행복하다. 이렇게 많은 서점들을 다 들릴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푹 쉬고 개운하게 일어난 여덟 번째 날, 오늘은 아점을 먹은 뒤 버스를 타고 아래로 내려간다.


202번 버스는 제주 서쪽을 빙 도는 긴 노선인데 마침 가고 싶었던 무명 서점도 이 버스를 타면 갈 수 있었다. 위미의 라바 북스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서점이라 더 궁금했던 곳. 숙소에서 30분만 달리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모든 사랑은 반복을 좋아해요.
그것은 시간을 거부하는 것이니까요.
당신과 내가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 존 버거, <A가 X에게>



무명 서점은 정겨운 동네 건물 2층에 있다. 편히 앉아 책을 보는 소파도 있고 잔잔한 클래식 - 가령 슈만의 어린이 정경 - 도 흘러나왔다. 소파 옆 선반엔 평소 좋아하는 작가 존 버거의 책으로 가득했다.


그토록 사고 싶었던 책 <A가 X에게>를 발견하곤 손에 잡으려는 참이었는데, 마침 엄마도 존 버거의 책 <아내의 빈방>을 읽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내가 떠난 후 존 버거와 그의 자식들이 쓴 편지를 모은 책이었다. 존 버거는 아내가 떠난 지 3년 뒤인 2017년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책 속 편지를 읽으며 잠시 울컥하셨다고.


버거의 문장은 참으로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한번 읽으면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 섬세하고 매혹적인 문장들. 이렇게 멋진 서점에서 존 버거의 책을 살 수 있다니 그저 행복할 뿐이다.






저녁에는 일몰이 예쁘다던 풍차 해안도로에 갔다. 정확히는 '판포포구'라는 꽤나 이국적인 이름을 지닌 곳이다.


제주에서 맞이하는 첫 일몰. 어제만 하더라도 조금 흐렸던 것 같은데 하늘은 시시각각 놀라운 모습으로 변하며 우리를 환영했다.


하루가 저무는 모습만으로도 이토록 마음이 뭉클해지다니, 꼭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동안 내 안에 갇혀 많은 행복을 놓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다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도 눈앞에 여전히 찬란한 오색빛깔 풍경이 생생히 아른거린다.


베란다 밖으로 나가 위를 올려다보니 깜깜한 하늘에 새끼손톱만 한 초승달이 떠 있었다. 아주 밝고 맑은 모습으로, 가려진 부분까지 선명히 보일 만큼.




행복은 공짜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


단지 그걸 발견하느냐

아니면 지나쳐 버리느냐의 문제일 뿐.






글에 나온 공간들

: Good Places to Visit



김녕해수욕장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7-6


금능해수욕장

제주시 한림읍 금능길 119-10


무명 서점

제주시 한경면 고산로 26 2층


북스토어 아베끄

제주시 한림읍 금능 9길 1-1


판포포구 (풍차 해안도로)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


바당길 (전복죽, 보말칼국수)

제주시 한림읍 한림서길 18


우무 Umu (우뭇가사리 푸딩)

제주시 한림읍 한림로 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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