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히말라야 정상에 얼어붙은 사람들

하얗게 멍든 종이

by 완다

요즘 밤마다 인스타그램에서 자극적인 릴스가 내게 뜬다.

최근엔 히말라야산맥 에베레스트 등정의 실상을 생생하게 담은 영상이었다.


지금까지 히말라야는 내게 언제나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였다.

눈발이 흩날리고, 옷이며 머리며 얼굴 위까지 하얗게 얼어붙은 장면.

눈보라와 낮은 온도로 시야는 뿌옇게 가려지고, 카메라도 흐릿하게 흔들렸다.

그냥 모호하고 흐리멍덩한 예전의 저화질 다큐멘터리 필름 그대로, 그렇게 비현실적 이미지로 굳어 있었다.


그런데 내게 갑자기 들이친, 요즘 영상은 달랐다.

바디캠이나 드론으로 찍은 화면은 놀라울 만큼 선명했고 그 속의 숨소리와 바람 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려와,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히말라야 정상에 얼어붙은 채 남아 있는 시신들

-두꺼운 등산복에 싸인 채 부패하지 못하고, 그저 얼어붙은 미라처럼, 정말 잠든 것처럼 보이는 그들-마저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이어지는 구간 중 해발 8,000m 이상을 ‘데스 존(Death Zone)’이라 부른다.

그곳은 기본적으로 지세가 험하고 기후가 거칠기도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공기 중 산소 농도가 지상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긴 시간 동안 머물게 되면 신체의 기능이 저하되고, 의식이 상실되며,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한마디로 목숨을 걸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곳이다.


요즘은 등산복이나 등산 장비도 더 좋아졌지만, 오히려 사망자는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데스 존에서 머무는 시간을 줄이는 게 무조건 중요한데,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인증샷이나 촬영에 소요되는 시간도 길어지면서 그만큼 중간에 탈진이나 의식 상실,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이들이 많아진 탓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뻔히 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도, 심지어 시신조차 가지고 내려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가는 구조자마저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나중에라도 옮기려면 헬리콥터와 전문가, 장비가 필요하고 수억 원대의 비용이 든다 하니 방치는 불가피하다.


그렇게 남겨진 시신이 지금까지 약 200구에 이른다고 한다.

눈에 덮여 찾기도 어렵고, 얼음 속에서 꺼내는 일도 쉽지 않다.

최근엔 지구 온난화로 묻혀 있던 시신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 그들은 여전히 형태를 온전히 간직한 채 나타난다.

보온재 덕에 몸은 꺼지지 않았고, 살결이 드러난 곳은 부패가 되지 않아 기껏해야 마네킹 같다.

정말, 그냥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다.


외진 곳에서 떨어져 발견된 시신도 마음이 무거운데, 등산로 한복판에서 앉거나 엎드린 채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모습은 더욱 비참했다.

그리고 그 곁을, 지금의 등산객들이 지나쳐 가야만 한다.

때때로 이런 장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했다.


그들 중 몇몇은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별칭으로 알려지고,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것도 슬픈데,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면 얼마나 잔혹할까.


그들을 지나치며,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

‘나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경고, 그와 동시에 지나칠 수밖에 없는 미안함.

이기적인 자신을 자각하면서도, 죽음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고, 꼭 살아서 정상에 올라야겠다고 다짐하지 않을까.


한편, 지금은 누워있는 이들도 오르며 먼저 간 이들을 똑같이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그렇게 죽지 않을 거라 믿지 않았을까.

등정 전이나 도중에, 동료들과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 속 얼굴들을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어쩌면 그들은, 죽음을 각오했던 만큼 좋아하는 곳에서 죽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살고 죽는 일은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짐작해 보건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려는 사람은 결국 흔적을 남기려는 사람이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고 싶은 사람에

가깝지 않을까.


나는, 잘 썩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그 무엇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율배반적 이게도,

결국 이렇게 글로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살다 보니 이런 태도로는 현실에 충실하기 어려웠다.

‘글일랑 써서 뭐 하나’ 하며 잊혀지기만을 바라는 마음은,

결국 ‘성과’만을 바라보며 좇는 마음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글을 쓰는 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아니, 과정이 전부라는 것을.

마지막 문장 끝에 찍히는 마침표의 무게가 특별히 묵직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듯,

글을 완성하기 위해 쓰는 한 자 한 자가 다 소중하다는 것을.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그 과정을 통해

집중하고 배우고,

조금씩 성숙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자체로 만족하고 충분히 감사할 수 있다는 것.


요즘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 바로 그것이다.


히말라야와 전혀 상관없이 살아온 줄로만 알았는데, 나는 그 곳곳에 있었다.

때로는 정상 정복의 희망에 부풀어 웃는 모습 속에,

길에 누워 나를 버리고 떠나가는 동료들을 원망하는 중에,

생사를 오가는 줄도 모르고 지금 편안한 침대 안에 누워 있는 듯한 환상 속에,

살기 위해 누운 자들을 애써 못본 척 지나치는 중에,

살아남아서 다행이다고 안심하며 인증샷을 찍고 하산하는 중에,

얼어서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된 줄도 모르고 파묻힌 중에,

동료를 구하러 다시 찾아온 가운데...

마치 오랜 세월 빙하 속에 묻혀 있던 내가 해동되어 깨어난 것 같다.



투고한 지 한 달 하고 보름여,

출판사로부터 제의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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