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소박한 꿈이 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내 꿈은 어느 유튜브 비디오에서 본 이런 사람들이었다.
쇼핑몰이나 공원에 뜬금없이 피아노를 한대 두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비디오에 나오는 사람들.
백팩을 메고 바쁘게 지나가던 직장인, 학생들이 피아노를 향해 이길 수 없는 유혹을 마주한 듯한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그중 몇은 가던 길을 멈추곤, 백팩을 발치에 던지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피아노를 연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깜짝 놀랄 정도로 멋들어진 재즈를, 혹은 클래식을 눈을 감고, 세상 이만한 천국이 없는 것 같은 표정으로 연주한다. 망중한이 이런 것 아닐까. 아주 바쁜 맨해튼 한가운데 자리한 공원을 바쁘게 통과하던 사람이 만나는 천국 같은 짧은 한 때.
몇 번 우연히 본 동영상에 나온 그 사람들의 표정에 반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급한 발걸음을 멈추고 멋들어지게 연주할 수 있는 "그 한곡"이 있다는 것도 멋졌다. 이 바쁜, 메마른, 각박한, 천박한 세상에 그렇게 천국같이 아름다운 곡 하나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 하나로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할만했다.
초등학교 6학년(나는 국민학교 세대이므로 국민학교가 더 알맞은 표현이지만) 겨울, 왜 배우는지 알지 못했던 몇 년 간의 피아노 레슨 끝에 콩쿠르에 나가게 됐는데, 하루에 몇 시간씩 쳐야 하는 그 노래가 토할 것 같이 지겨웠다. 짧고 뭉툭한 손가락을 가져 기타를 배울 때도 손목을 꺾어 코드 잡는 법부터 먼저 배워야 했던 나인데, 열두 살 내가 몇 시간씩 연습했어야 했던 곡은 전부 옥타브로 연주하는 곡이었다. 있는 힘껏 손가락 사이를 벌려 옥타브로 진행되는 그 곡을 연습하다 보면 손목과 손가락이 비명을 지르는 듯 아팠다. 그렇게 아프도록 손가락을 찢어 건반을 기껏 눌러도 손가락이 너무 짧아서 항상 바로 옆 건반을 같이 누르곤 했다. 이건 연습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내 손가락 생겨먹은 게 글러먹은 탓인데- 이런 노래를 선곡해준 선생님이 무지막지하게 원망스러웠다.
결국 콩쿠르가 몇 주 남지 않은 어느 하루 가출을 감행했다. 친구 집에 몇 시간 숨어있다 저녁때 집에 가라는 친구 어머니 말에 집에 온 탓에 아무도 모르는 가출이기는 했지만, 하여튼 그렇게 그 곡이 싫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짧은 손가락으로 그 곡을 연주하다 실수할 것이 (실수할 것이 아주 뻔했기 때문에) 끔찍하게 무서웠다. 가슴에 연자 맷돌을 올린 것 같이 답답했고, 밤만 되면 피아노를 잘못 치는 악몽을 꿨다.
결국 며칠의 용감무쌍한 실랑이 끝에, 결국 엄마는 내 대신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내 콩쿠르를 취소했다. 더불어 아예 피아노도 끊어버렸다.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다시는 그 선생님 안 봐도 된다. 아싸.
그런데 사람이 참 우습다.
인생에 하는 후회가 여러 가지일 텐데, 내가 땅을 치며 하는 후회 중 하나는 그때 피아노를 그만둔 것이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미래의 나는, 지금의 현재가 되어 그때의 어린 나의 짧은 결정을 안타까워한다. 그때 조금만, 몇 년만 더 쳤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름다운 소품 하나 정도는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또 하나 신기한 것은,
그 마지막 곡, 모든 부분을 내내 옥타브로 치거나 빠르게 옥타브를 오르락 내리락해야 해서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그 곡을 내가, 아니 내 손가락이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콩쿠르라는 압박 때문에 하루에도 몇 시간씩 연습했던 탓이다. 노래 제목도 기억이 나질 않는데, 나는 그 곡을 연주할 수 있다. 와,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 사실 고맙지.
오랫동안 아주 아름다운 피아노 곡 하나를 연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왔다. 그런 날이 오기를.
그리고, 이번 주에 27년 만에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굳은 손가락과 느린 눈은 다음 음표를 찾지 못해 연신 잘못된 건반을 눌러대지만,
나는 마치 크리스마스 아침 스타킹에 담긴 산타의 선물을 풀어보기 바로 전의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을 모두어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집에서 짬짬이 피아노 연습을 하며 느낀 점이 있는데,
어릴 때 (지금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지만) 피아노 연습을 받을 때 내가 잘못된 건반을 누르거나, 서스 페인 페달을 잘못 누르거나, 잘못된 템포로 연주하면 곧잘 자로 손가락을 맞거나, 바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몇 번의 선생님이 바뀌었어도 모두 같았다. 아마 그래서 피아노가 재미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미국인 할머니는 전혀 소리를 지르지 않으시는 데도, 잘못 쳤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매번 어깨가 딱딱하게 굳는다. 혼날까 봐 무서워서- 어릴 때의 기억이란 이렇게 무섭다. 아직도 겁이 나다니.
어릴 때 피아노는 테크닉의 향연이었다. 테크닉과 해석의 큰 두 축 사이에서 어린 내가 곡을 해석해서 표현한다는 것이 만무했을 테니 아무래도 선생님들은 테크닉에 더 큰 방점을 두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의 나는 나름 그렇게 해석한다.
메트로놈에 맞춰 기계처럼 움직이는 내 손가락. 크레셴도와 디크레센도 사이에서 정확한 음의 전달 등등.
지금의 할머니 선생님은 곡을 바르게 배우되, 일단 곡을 알면 내 맘대로 치라고 하신다. 네가 느끼는 음악이 '너의 음악'이란다-
"이 곡은 포르테로 끝나라고 되어 있지만 나는 이 곡을 포르테로 끝내지 않아, 뭔가 그 느낌이 아니야"하며 포르테로 끝나라는 곡을 아주 부드럽게 마친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해석이 더 마음에 든다. "I vote for you!"
서른아홉에 시작한 피아노 레슨의 목표는, 아주 바쁜 일상의 한 틈에 공원 한가운데 아무렇게나 놓인 그랜드 피아노를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 이다. 공원을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 그중 한 사람이지만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 순간 그 공간에 나와 피아노만 존재하는 것 같은 바로 그 순간을 내 삶에 만들어내고 싶다. 카네기에서 연주할 것도 아니고, 피아노로 대학을 진학할 것도 아닌, 마흔을 한 달 앞둔 지금의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한다. Amor Fa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