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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Feb 06. 2019

그리움




다시 집을 떠날 준비를 한다. 늘어난 옷가지를 한 벌씩 고이 접어 가방에 넣으며, 마음에 남는 그리움도 고운 색 한지에 접어 마음 어딘가의 서랍을 열고 함께 담는다. 사각거리는 꽃물 예쁜 종이에 하나하나 몽글몽글한 그리움을 조금씩 나눠 덜어 다시 마음껏 그리워할 날 다시 열어보려 지금은 서랍에 담는다. 친구를 위한 그리움도 아쉬워하며 서랍에 담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그렇게 담고, 공기와 하늘, 구름과 산에게도 아쉬운 마음을 전하며 그 남은 마음을 서랍에 담는다. 바쁜 전철역의 발걸음에게도 아쉬움을 남기고, 서대문역의 낡은 국수집에게도 잘있으라고 마음을 건넨다.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을 때 다시 꺼내어 새롭게 그리워해야지. 그때까지 한약 집 약서랍 같은 작은 내 마음 서랍에 잠깐 잠들어있으렴. 그리움 너와 함께 살면 내가 좀 고단하더라. 잠깐 서랍에 잠들어주렴. 


그리움은 사람에게도 깃들고, 공간에도 깃들고, 기억에도 깃들더라. 

이토록 과거만 바라보는 감정이 어디 있을까. 이토록 과거 없이는 가질 수 없는 감정이 또 어디 있을까. 

그리움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나간 감정에 대한 현재의 이야기가 그리움이다. 

아마도 현재에 더 이상 사랑할 수 없기에 드는 마음이 그리움이지 않을까. 더욱 사랑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때, 우리는 그리워한다. 그러니 그리움은 사랑의 치환이다. 사랑이 공간을 내어줄 때, 그리움이 와서 그 자리를 채우고, 사랑을 재료 삼아 싹을 틔운다.



밀려오는 감정의 어지러움을 여미어 담아 그리움이라고 이름 짓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그리움이 해일처럼 덮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나누어 담는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그때그때 열어보리라 생각하며.


자, 이제 곧 길을 떠나자. 삶은 길에서 보내는 시간. 외롭다고 생각하는 순간 집에 와 닿기도 하고, 집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곧장 또 짐을 꾸린다. 구불구불 굽이치는 좁다란 오솔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생명과 우주에 그리움을 건네며, 또 그렇게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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