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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Aug 03. 2024

1화) 유령이 나타났다

가로등과 유령과 나

며칠 되었다. 유령이 나타난 것은. 


처음엔 내 그림자라고 생각했다. 나와 너무 가깝게 붙어있어 빛에 가려진 내 그림자를 언뜻 본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가끔 그림자가 조금 일렁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저 잘못 본 거겠지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렇게 며칠을 내 그림자(라고 생각한 유령)와 붙어 다녔다. 당연하지 않은가, 밤이 되면 그림자가 나타나는 것은. 내 그림자처럼 생긴 그것이 유령이라는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유령을 처음 발견한 것은 습기가 가득한 8월의 여름 늦은 저녁이었다. 그날 나는 야근 후 집 근처 공원을 지나던 중이었다. 여름밤의 습기가 가득한 초록색의 공원은 가로등 불빛과 어울려 무언가 고즈넉하고도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아마도 야근의 피곤에 절어있던 나는 그 분위기에 왜인지 홀려버렸던 것 같다. 집으로 가던 발길을 돌려  평소엔 잘 들어가지도 않는 작은 공원에 들어가 가로등 불빛 아래 위치한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꽤 늦은 시간의 공원은 아직 한낮의 온도를 머금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바쁘게 날아가니는 벌레떼의 아주 작은 날개소리를 제외하고는 공원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이른 오후 공원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소음은 어느덧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모두 돌아가고 공원은 그들이 남긴 여운만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아직 따뜻한 기운이 남아있는 나무 벤치에 몸을 맡기며 내려앉았다. 몸 한가운데의 무엇인가가 함께 조용히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 조용한 하강을 느끼며 가로등 불빛 아래 벤치의 온도와 아직 남아있는 한낮의 여운을 음미했다. 


그때였다. 유령의 존재를 처음 느낀 것은. 


떼어낼 수 없는 존재인 그림자는 당연히 가로등 불빛에 굴절되어 내 뒤에서 내 음영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당연한 듯 가로등 불빛과 내 존재의 뒤편에 있던 그림자는 벤치 옆 사선으로 가로등의 반대편에 친근하게 내게 붙어 서 있었다. 내 그림자와 따뜻한 불빛. 익숙한 그 둘의 존재. 익숙한 공간과 나.


그런데 그때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주 조금씩 흔들리듯 자라나서 한동안 그림자가 커지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바람에 무엇인가 휘청이며 그림자를 일렁이게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감지했다. 가로등 불빛이 움직이지 않는데 유독 내 그림자가 일렁이며 길게 길이가 늘어나 있는 것이었다. 나보다도 더 큰 길쭉한 그림자. 짧은 내 머리와 달리 그림자는 긴 머리카락마저 흔들리고 있었다. 


'뭐지?'


이질적인 존재였다. 나와는 전혀 다른 실루엣의 무언가. 흠칫하며 나는 그림자를 응시했다. 긴 머리카락의 그림자는 내가 눈치채자 마치 그것이 큐라는 듯이 이내 나에게서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조금씩 몸을 움직여 조심스레 땅에 붙어있는 자신의 조각조각을 하나씩 떼내는 듯이 보였다. 분명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그림자는 조금씩 자신을 떼어내고 있었다. 마치 옷의 실밥을 하나하나 뜯어내듯 땅에 붙어있는 자신의 경계를 투둑, 투둑 하며 한 올씩 정성스레 뜯어내려갔다. 마치 다른 공간인 듯 따뜻한 공원의 가로등 노란 불빛 아래 나는 벤치에 앉아서 내 그림자가 조금씩 자신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가락을 땅에서 떼어낸 그림자는 자신의 나머지 음영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뜯어내려갔다. 빛과 자신의 경계 사이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자신의 일부를 잃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긴 신중한 모습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그림자는 긴 머리카락의 음영을 흔들며 나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다. 조금씩 자신을 땅으로부터 분리해 낸 그림자는 마지막으로 나와 붙어있는 부분의 자신을 조금씩 떼어냈고, 마침내 완전히 분리시킨 것이었다. 나와 붙어있는 부분을 떼어낼 때 나는 조금 간지럽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림자의 한 땀 한 땀 의지가 담긴 행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저 그림자가, 떼어내는 행위를 마칠 때까지 지켜만 보았다. 그렇게 내 그림자는, 아니 유령은 내 뒤, 가로등 불빛의 반대에서 서서히 걸어 나와 마침내 가로등 불빛과 내 사이 가운데 우뚝 섰다. 가로등과 유령과 나. 나와 빛을 가로막는 내 그림자라니, 아니 유령이라니. 

 

벤치에 앉은 채 나를 바라보며(어째서인지 나는 유령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느껴졌다) 서 있는 유령을 보고있자니 무언가 내가 있는 공원마저 물리학의 법칙을 어기며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노란 가로등 불빛을 가로막으며 내 앞에 선 그림자. 아니 이제는 내 그림자로 볼 수도 없는 존재이니 어엿한 유령일지도 모르겠다는생각이 든다. 유령은 얼굴이 없었다. 그림자이니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빛은 투과하지 않지만 어째서인지 명확하게 여전히 그림자의 형상을 한 유령은 여전히 긴 머리카락을 일렁이며, -바람 한 점 없는데도 그 유령의 머리카락은 바람에 흔들리듯 천천히 공간을 유영했다-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어째서인지 유령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가 난 걸까? 나는 얼굴이 없는 그림자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표정이 없지만, 나는 그 유령이 딱히 화가 나 있지는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공포영화에서 보는 유령들은 대개 화가 나 있던데, 이 유령은, 아니 그림자는, 화가 나 있지 않았다. 그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눈이 없지만 유령은 깊은 공간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똑바로 쳐다보는 유령을 바라보며 나는 순간 세상이 적막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낮의 온기를 내뿜던 나무벤치도 갑자기 어떤 애정도 없다는 듯 나를 향해 따뜻한 감촉을 내뿜지 않았다. 온기가 주는 환대가 사라진 벤치는 소름끼치도록 생명이 없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를 현란하게 넘나들던 벌레떼의 춤도 갑자기 유령의 뒤로 사라졌다. 낮의 사람들이 남겨놓은 웃음과 대화의 여운도 마치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스스로를 공간에서 잘라내었다. 마치 공원에는 가로등불과 유령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가로등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 감사할 지경이었다. 가로등 빛마저 없었더라면 나는 내 공간에 유령이 침투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유령의 공간으로 빠진 것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혹은 어쩌면 유령은 전등불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빛과 유령과 나. 유령은 빛을 굴절시키며 여전히 그림자로 내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물리학의 기초를 거스르는, 어둠, 혹은 내 그림자, 혹은 유령, 이 빛을 가로막고 내 앞에 서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이 현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그 순간의 정적을 깬 것은 갑자기 요란하게 울린 전화벨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유령이 사라졌다. 순식간이었다. 핸드폰 벨소리에 잠깐 생각이 흐트러진 그 짧은 순간에 유령은 빨려들듯 다시 내게로 돌아와 친숙한 그림자가 되어있었다. 그러고선 애초에 자신을 잘라낸 적이 없다는 듯 태연하게 다시 그 짧은 머리의 익숙한 내 옆모습을 반사하고 있었다. 벤치의 온도와, 벌레들의 군무와, 낮의 여운이 칼로 잘라낸 듯이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밤늦은 반딧불이의 춤과 가로등 불빛 아래 날파리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공원의 공기에 일렁임을 더한다. 마치 나는 잠시 이공간으로 이동했다 전화벨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다시 따뜻한 낮의 기운이 담긴 이곳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내가 꿈을 꾼 것인가?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나는 전화를 받는다.


엄마였다.


"엄마?"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딸을 걱정한 엄마의 전화였다. 어디냐는 물음에 근처 공원이라고 답하며 천천히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유령은 다시 내 그림자가 되어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엄마와 계속 통화를 하며 집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라 이제 올라간다고 하는 내게 엄마는 깜빡하고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듯이 한마디를 한다.


"얘, 참 어제 주란이가 죽었단다. 자살했대."


'주란이가 누구더라?'


주란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내게 엄마는 설명을 덧붙인다.


"왜 주란이, 청송 할머니네 앞집 살던 애 있잖니."


그제야 생각나는 먼 기억 속의 그 아이 주란.


"커서 대구에서 살았다는데 얼마 전에 집에 와서 자살했대. 청송 뒷집 영식이네 할머니가 아빠한테 오늘 연락이 왔대."


"...응. 엄마, 올라가서 마저 이야기해요."


나는 그렇게 전화를 끊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전 희미한 계단 불빛에 비친 그림자를 흘끔 쳐다보았다. 그림자는 조용히 내 뒤를 따를 뿐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들어오자 거실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부모님이 보인다. 함께 온 나의 그림자는 가로등 불빛보다 희미한 거실의 불빛에 어디론가 수줍다는 듯이 사라진 듯했다. 주란이의 죽음이 잊었던 고향이야기를 불러낸 듯이 두 분은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현관을 들어서는 나를 향해 아버지가 손을 흔들며 엄마에게 하던 말을 마저 끝맺는다.


"... 그래서 주란이 아빠 대식이가 그렇게 장가를 간 거였어."


주란이의 아버지 이름이 대식이었구나. 나는 새삼 내 기억 속 작고 초췌한 삼촌의 얼굴을 떠올린다. 몇십년을 떠올린 적 없는 얼굴인데도 거짓말처럼 깊은 우물에서 길어올리듯 내 기억 깊은 곳으로부터 대식이 삼촌의 얼굴이 뭉실 떠올랐다. 작고 마른, 항상 찡그린 삼촌의 얼굴. 


"무슨 이야기해요?"


평소라면 다녀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곧장 방으로 들어갔을 나는 주란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며 두 분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응 주란이네 이야기하고 있었지."


엄마가 거들고 나섰다.


"주란이 아버지, 대식이 장가간 이야기하고 있었어. 어쩌다 소식을 들었는데 주란이 걔가 그렇게 됐다니까 마음이 안 좋네."


아버지는 소주를 한 잔 들이켜시며 말을 잇는다.



대식이 삼촌은 무서웠다. 흰 런닝샤쓰만 입고 고무신을 신은 채로 어디에선가 얻어온 듯한 정장용 벨트로 그의 마른 몸에 맞지 않는 큰 낡은 회색 정장바지를 바짓단을 둘둘 접어 올린 채 입곤 했다. 밭에 일하러 갈 때도 그렇게 입었고 장에 나갈 때도, 집에서 쉴 때도 항상 그 옷차림이었다. 나는 대식이 삼촌이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삼촌에게 일거리를 주던 현식이 삼촌하고만 주로 대화를 했는데 현식이 삼촌의 목소리는 멀리에서도 들리는데 대식의 삼촌의 목소리는 작고 웅얼거려 멀리서 듣는 나에게는 마치 현식이 삼촌만 이야기를 하고 대식이 삼촌은 듣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식이 삼촌은 항상 땅만 보고 걸었고, 현식이 삼촌과 이야기할 때도 그는 땅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듣기만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항상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현식이 삼촌은 나와 길에서 마주치면 머리도 쓰다듬어 주며 인사도 해주고 또는 집으로 불러 사탕도 주곤 했는데, 대식이 삼촌은 나와 어쩌다가 눈이 마주쳐도 인사는 커녕 화가 난 표정으로 오히려 무섭게 노려보곤 했다.  나는 그런 삼촌이 무서워서 그가 멀리 밭에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일라치면 동네 골목 어귀에서 주사위 놀이를 하다가도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 도망가곤 했다. 


주란의 어머니도 무섭긴 매한가지였다. 남편만큼이나 마르고 초췌한 그녀는 어릴 적 당한 사고로 한쪽 눈의 홍채를 잃었고, 한쪽 눈이 하얀 그녀가 나는 귀신만큼이나 무서웠다. 마르고 피곤한 그녀의 얼굴에 얹혀있는 하얀 눈은 그녀를 더욱 무섭게 보이게 했다. 그녀는 스무 살 적 고아가 되어 가진 것 없는 소작농인 대식 아저씨에게 중매로 시집을 왔다고 했다. 가진 것 없는 고아와 소작농인 부부는 서 씨 집성촌인 할머니의 마을 가장 앞에 진흙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 산세가 험하고 외진 곳이라 흉악범들을 따로 모아놓는 교도소가 들어올 정도인 청송 시골 마을에 지금 생각해 보면 다들 너 나 할 것 없이 가난한 것이 당연했겠지만, 그 당연히 가난한 마을에서도 대식이 아저씨네 집은 더욱 가난했다. 


대식이 아저씨네 집 뒤에는 동네 이장이기도 했던 현식이 삼촌이 살고 있었는데,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전화기가 있었다. 현식이 삼촌의 집은 번듯한 기와를 얹고 잘 닦여진 대청마루가 있는 집이었다. 마당에는 새로 산 듯한 반짝거리는 경운기가 있었고, 외양간에는 소도 있었다. 


작은 골목을 두고 대식이 아저씨와 이장 아저씨네 집을 바라보고 우리 할머니 집이 있었다. 할머니 집은 마당이 깊었다. 마을을 둘러싼 산이 기울이는 산그림자가 아침저녁으로 두르는, 그런 마당이었다. 닭과 오리가 마당을 뛰어다니고 아침저녁으로 소에게 줄 풀죽을 끓이는 냄새가 마당을 가득 채우는, 그런 집이었다. 


대식이 아저씨와 아줌마가 진흙을 얹어 직접 지었다던 주란의 집은 마을에서 가장 허름한 집이었다. 집은 어딘가 대칭이 맞지 않았고, 한쪽이 무너질 듯이 간신히 서 있는 형상이었다. 집에는 외양간이 달려 있었지만 외양간에 소가 있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집에, 언제나 화가 난 듯한 대식이 삼촌과, 남아있는 한 눈이 슬퍼 보이는 숙모와, 언제나 우리 집을 기웃거리는 주란이 있었다. 




"서주란이! 너거 집에 가라!"


주란이를 생각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기억. 할머니가, 혹은 나와는 여덟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막내 고모가 항상 우리 마당을 기웃거리며 떠도는 주란을 향해 지르는 소리였다. 


여름방학이 되어 엄마는 난생처음으로 한 달 내내 날 청송에 있는 할머니 집에 내려보냈다. 여덟 살 아이가 시골에서 뛰어놀기를 바라셨던 것일까, 아니면 할머니가 첫째 손녀가 꽤 컸으니 함께 지내고 싶다고 하셨던 것일까. 이유는 딱히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여덟 살 여름을 산으로 가득한 청송 시골 골짜기에서 보냈다.


험한 산세 사이에 있는 마을은 낮이 짧다. 산 사이로 느지막이 해가 나는가 싶으면 어느새 이른 저녁을 맞는다. 해는 뜨기가 바쁘게 달려 부끄럽다는 듯 맞은편 산 사이로 숨어버린다. 그 짧은 낮 시간 동안 어른들은 어딘가로 나가 버리고, 마을에는 어린아이들만 남는다.


이 작은 서 씨 집성촌에 한 해에 세 명의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대식이 삼촌네 주란이, 현식이 삼촌네 효정이, 그리고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은열, 유일하게 돌림자인 '식'자를 쓰지 않은 내 아버지의 딸, 나.


나는 외지에서 나고 자랐기에 이 마을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작은 시골마을이란 그렇다. 언제나 그 마을 사람의 아이는 곧이어 그 마을 사람이 되고는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떡을 지어 돌리며 '첫 손주가 딸'이라며 집안의 보탬이 될 거라 기뻐하셨다고 했다. 내가 처음 추석에 내려갔을 때 마을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이 집안의 외아들이 낳은 첫째 딸이라며 선물을 주었다고 했다. 서울아이답게 하얗고 말개서 이뻤다고도 했다.


어른들이 모두 어디론가로 나가버린 적막한 낮의 시골마을은 심심하기 그지없다. 높은 산세 탓에 텔레비전은 지지직거리기 일쑤였고, 할머니가 즐겨 듣던 라디오는 아무리 돌려봐도 옛날 노래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뜨거운 태양은 마을의 적막감과 만나 이글거리며 땅을 태우고, 마을에 남은 어린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며 산과 들을 뛰어논다.


나는 할머니가 바깥 외양간 대들보에 달아준 그네를 타며 앉아있었다. 적막한 오후와 뜨거운 햇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던 나는 우선은 그늘 아래 있는 그네에 도전해 보는 중이었다.  그때 효정이가 어디선가 쭈뼛거리며 나타난다. 나는 효정이가 좋았다. 효정이가 입은 분홍색 꽃 프린트가 있는 흰 드레스는 꼭 서울아이들이 입는 드레스 같았다. 모두 얼굴이 까맣게 탄 이 동네 사람들 중 효정이만 얼굴이 하얳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효정이네 대청마루에서 둘이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뒷산 앞의 고목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을 앞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고, 개구리를 잡겠다며 하루 종일 쏘다니기도 했다. 효정이 할머니는 효정이가 나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동빈이랑 놀면 효정이가 서울말을 쓴다"며 내게 매일 놀러 오라고 하곤 했다. 서울말을 쓰는 귀한 아이 취급에 나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루는 효정이와 손을 잡고 마을을 쏘다니는데 효정이가 엉거주춤하게 서서 뒤를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함께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 주란이가 서 있었다. 주란이는 항상 같은 옷을 입었다. 흰색 바탕에 청록색 점이 찍혀있는, 주란의 몸에 맞지 않아 주란의 통통한 몸을 꽉 끼운 그 옷은 항상 더러웠다. 주란의 얼굴에는 항상 무언가 먹다 남은 가루가 묻어있었다. 읍내에서 사 왔을, 주란의 발보다 커서 항상 발의 앞쪽이 반은 삐져나와있는 슬리퍼를 신은 주란은, 여덟 살의 내가 혐오할 만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왜?"


주란을 향해 여덟 살의 나는 소스라칠 만큼 못된 목소리로 내뱉는다.


"아이다...."


주란은 내 기운에 밀려 동그란 배를 내민 채 뒷걸음질 친다.


나는 그 동네에 내가 없던 그 해 여름 이전까지 효정과 주란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먼 친척지간인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집성촌 사람들은 어떻게든 연결된 먼 친척이라는 깊은 친족의식이 있다. 나 또한 둘의 아빠를 삼촌이라고 부를만큼, 잘은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덟 살의 어린 나는 그저 주란이가, 주란이 입은 옷이, 주란의 입에 묻는 음식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어린아이란 간혹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기가 가진 힘을 이해할 때가 있다. 그 해 여름의 나는 그런 아이였다.


"나 바빠. 우리한테 말 걸지 마."


나는 효정의 손을 끌고 앞으로 바쁘게 걸어가기 시작했고, 효정은 머뭇거리다 결국 내 손을 함께 잡고 날듯이 그 자리를 함께 빠져나왔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주란은 뒤에 남겨졌다. 아마도 그 해 여름 내내 그렇게 주란을 따돌렸던 것 같다. 효정과 나의 동맹은 단단했고, 할머니는 그런 나를 타박하고 탓하셨지만, 그럴수록 주란을 향한 나의 이유 없는 미움도 더욱 커졌다.


선선한 저녁이 되면 할머니는 밭에서 방금 따온 신선한 채소를 곁들여 저녁을 짓기 시작하셨고, 우리는 마당 한가운데 평상을 펴고 저녁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농부의 밥상이었다. 그리고 항상 대문 앞에는 주란이 서 있었다. 모든 이들이 저녁을 먹는 그 시간에 주란은 왜 우리 집 문 앞에 서있었던 것일까. 왜 그의 성난 아버지와 슬픈 어머니, 방금 태어난 갓난 동생과 함께하는 저녁상이 아닌, 우리 저녁상을 기대했던 것일까. 주란이는 아무도 초대해주지 않는 우리집 만찬을 바라보며 대문 곁에 문지방을 밟고 서 있었다. 눈에는 선망이, 기대가, 기다림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주란이 안타까웠던 할머니는 간혹 주란을 저녁상에 초대하곤 했다. 이리 와서 밥 먹자는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주란은 신고 있던 슬리퍼를 집어던지고 평상 위에 자리를 잡았다. 얼굴에 묻혀가며 밥을 먹고, 별 것 없는 농부의 반찬거리를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그리고 후식으로 나오는 수박과 포도까지 모두 먹고서야 주란은 느지막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침이면 다시 우리 집 대문 앞에 서있곤 했다. 그 여름 이전에도 그것이 주란의 일상이었는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대문 바깥에 밤늦게까지 서있는 주란을 보며 할머니나 막내 고모가 "서주란이 이제 고만 집에 가라!"라며 마을이 떠나갈 듯 고함을 지른 것이 기억날 뿐이다. 항상 화가 난 대식 삼촌과 슬픈 외눈의 주란이 엄마는 한 번도 아이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나는 주란의 그칠 줄 모르는, 부끄러움이 없는 탐욕스러움이 싫었다.




그런 주란이 죽었다. 

자살했다.

자살이라니.


"혹시 왜 자살했는지도 들으셨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유서도 없었대. 그냥 마을 앞 고목에 목을 맸다는구나."


"쯧쯧쯧....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 어린 게 그랬을꼬."


유서도 남기지 않은 스물여덟 살의 자살. 어딘가 모자란 듯 게걸스럽고 탐욕스러웠던 여덟 살 아이가 자살을 한 것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우리 문 밖에 몇 시간이고 서있던 그 아이가, 주는 간식을 모두 게걸스럽게 해치우던 그 아이가, 쉽게 겁을 먹어 동네 아이들이 돌을 던지면 슬리퍼를 끌며 도망가던 그 아이가, 자살이라고? 자살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에 애착이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옆에서 그림자가 움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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