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주말 아침부터 운동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보려 속눈썹 아카데미에 상담하러 나선다.
미용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그녀이고, 사업 계획이랄까도 없지만,
손재주가 워낙 좋고, 스스로 속눈썹을 해보는 것도 유용할 것 같아, 상담을 받아본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자격증 직업 교육 과정이고,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도 오는 진지한 곳인데,
놀랍게도 초등학생 자매가 와서 국가자격증 상담을 받고 있는 신기한 광경도 본다.
MBTI 까지 테스트를 해서 적성 상담을 해준다.
그녀야말로 자격증도 창업도 필요없는 사람인데, 세상엔 참 여러가지 사람과 상황이 있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 나는 세상이 참 넓다는 사실을 새삼 더 깨달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의 나는 일, 집, 일, 집, 가족, 매일 보던 사람들만 보던 편협한 사람이었다.
가던 곳만 가고, 하던 일만 하고, 우리 업계만 알고, 내 취미에만 파고 들고.
성격이 워낙 조심스러워서,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리스크를 피했다.
하지만 나와 피가 섞이지 않은 그녀를 만나, 새로운 곳을 가게 되고, 안 해본 일을 하고,
안 먹어본 것을 먹고, 다른 업계에 대해 듣게 되고, 내 지평선은 더 넓어져만 간다.
그녀는 내가 모험을 떠나게 해준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 둘은 든든한 팀원이다.
그녀의 미래의 지평선을 나도 더 넓혀주고 싶다.
그녀처럼 나도 부지런하게 움직여야지. 짐에서 운동을 한다.
부모님이 오랜만에 내 쪽으로 오셔서, 부모님을 만나러 나갈 준비도 한다.
집을 더 청소해본다.
여기저기 그녀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래서 좋다.
그녀가 느껴지는 것만 집에 두고 싶다. 내가 사는 집 구석구석이 그녀로만 가득 차도록.
우리의 예쁜 추억들이 이번 여름에도 더 쌓였고, 앞으로도 몇십년을 계속 쌓일 것이기에,
그녀와 상관없던 물건들은 더 정리해본다.
God of War 의 주인공 Kratos 의 망치, Horizon Forbidden West 의 Tremortusk 의 피규어,
For Honor 의 기사 Apollyon 피규어, Starfield 한정판의 Watch Case 등은 중고 시장에 올림.
다들 올리자마자 2시간만에 완판. 뿌듯.
흉물스러워서 달지 않고 있던 G-Shock 벽시계는 도저히 못 보내주겠어서 참는다.
대신 그녀가 예쁜 신발들을 더 놓을 수 있도록 신발장도 더 짜본다.
최근에 세일을 하길래, 그녀가 앉는 테이블 옆에, 숨 닿을 거리에 공기청정기도 하나 더 장만했다.
원래 두 개가 있었는데 침실에 하나, 거실 구석에 하나여서, 그녀 자리가 커버가 안 된 것 같아서다.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공기만 마셨으면 좋겠다.
그녀처럼 깨끗하고 정갈한 것들만 그녀 주변에 가득하도록.
그녀의 싱그러운 겉모습만큼 폐 속까지 건강하도록.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면 닮아간다.
그녀를 만나서 닮게 된 부분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하나는, 깔끔하게 정돈된 미니멀리즘이다.
그녀는 옷차림새도, 음식도, 주변 정리도, 자신의 신변이나 잡기도, 정갈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다.
예전의 나는 시끄럽게 음악을 계속 틀어놓길 좋아했고,
이것저것 쓸데없는 물건들을 쌓아놓기를 좋아했고,
생존을 위해서만 음식을 섭취하고, 심미성보다는 효율성을 따졌고,
세일을 한다고 필요없는 물건을 사고, 공간을 낭비했다.
그녀를 만나고, 음악을 줄였다. 그녀의 목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필요 없었다. 침묵이 좋았다.
집중해서 보지도 않으면서 영화 또는 미국 드라마를 틀어놓거나 하는 버릇도 줄였다.
벽에 아무 것도 걸지 않았다. 포스터를 다 버렸다. 여백의 미를 알았다.
가성비를 따져서 물건을 사기보다,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그녀처럼 아름다운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주변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나도 아름다워지는 것이란 걸 알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마음 속 허전한 구석을 쓸데없는 것들로 채우려고 했다.
이제 그녀가 나의 온 마음을 틀어막았다. 한 점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나는 오롯이 그녀의 것이다.
그녀는 주말을 맞아 나와의 추억들을 편집해서 동영상을 보내준다.
센스가 넘치는 자막과, 정성 어린 구성을 보고 있자니 너무 흐뭇하다.
무엇보다 어떤 장면에서든 어떤 각도에서든 아름다운 그녀가 날 웃음짓게 한다.
이번 영상은 우리가 사귀면서 가장 많이 웃었던 날 중 하나였다.
영상 속의 나처럼 육성으로 깔깔 웃으며 감상한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녀를 만나고 내 삶엔 웃음이 많아졌다.
그녀는 우스운 사람이 아니지만, 재밌고 유쾌하며 주변에 웃음만 주는 사람이다.
그녀를 만나기 전 나는 참 비장하고 진지한 사람이었다.
그녀를 만나서야 나는 세상이 왜 살만한지, 왜 웃고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됐다.
내 평생의 웃음을 다 모아서, 그녀에게 주고 싶다.
미래를 어서 보고 싶다.
몇주 뒤 나와 함께 여행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싶고,
몇달 뒤 나와 다시 함께 살고 있는 그녀를 보고 싶고,
몇년 뒤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고 있는 그녀를 보고 싶고,
몇십년 뒤 함께 지난 삶을 돌아보는 우리가 되고 싶다.
지금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나를,
이렇게 볼품없는 사람을 두 팔 벌려 안아준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웃을 수 있는 미래를 줄 수 있기를.
그녀가 보고 싶다. 그녀는 나의 미래이니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배움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매사에 정갈한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영상 속 어느 장면에서도 웃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