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공유 Nov 11. 2019

명품에 대한 자세

 

  이십 대 초반, 친구들이 하나 둘, 페라가모 신발이나 에트로 머리띠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일명 S급(진품이 아닌 가품이지만 구분이 어려울 만큼 진품 같은 상태의 가품을 말함)이라 불리는 것들을 두르고 다녔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가짜를 취하면서까지 명품을 두르고 싶은 욕구가 없었고, 아무리 똑같다 해도 가짜로 만들어진 것이 진품과 같을 리 없다고 믿었다.


  명품이라는 건 전통이 있고 제품성이 우수해 몇십 년을 써도 손에 깃들수록 멋이 나야 한다 믿는다. 브랜드의 철학이 있어야 하고, 고고한 경영전략이 어우러져야 명품이라 생각한다.


  내가 명품을 취하게 될 때가 온다면 몇십 년간을 귀하게 다루다 대를 물려주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 명품을 들일 수 있을 때부터 '차곡차곡 모아가는 맛을 누려야지' 하다가  삼십 대가 될 때까지 흔한 명품 하나 가진 것이 없었다.


  루이뷔통, 구찌, 프라다 등 다양한 명품이 있지만 내게 ‘명품’이라면 샤넬이 떠올랐다. 고집스러움이 느껴지는 샤넬의 경영 전략도 내 마음이 가는 이유 중 하나였다. 매장을 무리해서 늘리지 않는 것, 세일을 자주 하지 않는 것, 손쉽게 구 할 수 없다는 것 등이 샤넬에 대한 선망을 키웠던 것 같다.


단정하고 고고해 보여서 좋다.



  클래식 샤넬 점보백을 하나 가지고 있다. 급류에 쓸리듯 결혼을 향해 흘러가던 때, 지인들 말과 조각을 맞추어 가다 보니 시계 대신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올라간다는 샤넬 가방이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때는 내 쇼핑의 주관이나 환경에 깊이 생각하기 이전)


  말로만 듣던 상어냐, 양이냐, 은장이냐, 금장이냐, 사이즈는 무엇이냐를 두고 신중하게 고민했다. 고민하는 게 피곤하면서도 내심 ‘이래서 명품인갑다. 소재까지 고를수 있다니’ 하기도 했었다. 


  색상도 초록색, 핑크색, 와인색등 매장마다, 나라마다 들이는 색상도 다르다 했다.

  내가 제일 처음 구매하려 했던 곳은 하와이였다. 매장에 들어가 가방을 보여 달라 하자 쇼파에 앉히곤 음료와 과자를 내어주었다. 명품 샵도 처음 이었지만 손님에게 내어주는 다과가 있다는게 내가 살 가방이 고가임을 확인 시켜 주는 듯 했다.

내 눈을 사로 잡은건 다과 옆에 있는 냅킨이었다. 하얀 냅킨에 검은색 샤넬 마크가 딱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점원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곤 냅킨을 고이 접어 가방에 넣었다.(한국에 와서도 쓰지 않고 보관만 하다가, 화장실에서 써버렸는데 마치 뭐라도 해낸 냥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하와이 샤넬매장에서 만난 와인색의 반딱이는 에나멜 느낌의 샤넬 점보백이 제일 눈에 들어왔다. 관세를 전부 내고 나면 한국에서 사는 것과 금액이 비슷하지만, 한국에는 버건디 색상의 점보백이 없을 수 있으니 원하는게 눈 앞에 있다면 사야 한다던 친구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당장 육백만원 넘는 돈을 내려니 망설여져 여행 내내 이틀동안 매장에 들러 고민했다. 눈으로 살피던 샤넬백의 외관에 미세하게 가느다란 스크래치가 나 있었다. 나는 스크래치가 있으니 깎아주면 안되겠냐 물었다. 왜 우리나라에서도 스크래치 리퍼 상품전을 하니까, 그들도 그런게 있는 줄 알았다. 점원은 단호했다. 스크래치가 있어도 폐기하지 않을 것이며, 스크래치가 있어도 누군가는 사간다 했다.

  나는 속으로 '에이 육백만 원이나 쓰는데 스크래치 난걸 사냐? 한국에도 분명 있을꺼야.' 라며 자리를 털고 나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버건디 점보백이 있는지 샤넬 고객센터로 전화를 돌렸다. 한국에는 없었고, 언제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 돈 벌어서 나중에 버건디 샤넬백 사면 되지.'

  아쉬운 데로 검은색 클래식을 사기로 결정했다. 경기도에는 샤넬 매장이 없어 강남까지 나가야 했다. 매장에 갔어도 바로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대기를 걸어야 했다. 몇주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희귀해서 기다려야 한다던 샤넬 백을 길거리에서 얼마나 많이 마주쳤는지 모른다. 우리나라 소비 수준이 높은걸까? 가방을 사기로 하자 온통 눈에 가방만 보였던 거겠지?

  몇주 지나 강남까지 가서 받아온 그야말로 신줏단지. 포장을 살금살금 벗겨내고도 한지와 더스트백을 더 걷어내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행여 흠집이라도 날까 싶어 오래 보지도 않고, 받은 그대로 포장해 드레스룸 한편에 장식해 두었다.


  며칠간은 상자만 보아도 흐뭇했다. 내가 샤넬을 가졌다니. 나의 선망인 샤넬을 갖다니. 언제쯤 매고 나갈까, 시뮬을 돌려보는데 문득 트위드 재킷과 만원 버스일이 떠올랐다.(주관적 쇼핑에 관한 글 - https://brunch.co.kr/@wangbeeyaa/66)


가방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자


  모임에 들고나가려니 '여 봐라!' 하는 것 같아 꺼려졌고, 결혼식에 들고 가려니 벼르고 벼른 느낌이 날 것 같았다. 또 어떤 날은 맘 먹고 들으려다가 길거리에 그렇게 많던 나와 같은 가방을 가진 여자들이 떠올랐다.


  점점 샤넬 가방을 꺼내는게 내키지 않아졌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날 때까지 가방은 고이 장식되어 있었다.

   한번은 신랑이 "그 가방은 왜 메질 않아?"라고 묻기에 곧 다가올 지인 결혼식에 꼭 들겠노라 약속했다.

  구매한지 약 일년만에 함께 나선 외출길. 묵직한 가방을 품에 꼭 안고 차에 올라타는데, 단단한 차문에 긁히고 말았다. 금장 고리에 손톱만 한 스크래치가 났다. 어찌나 속상했던지, 지인 결혼식에서 주례사가 나오는 동안 내 눈과 손은 줄곧 금장을 떠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상자에 고이 넣어 포장하는 날 보며 웃겨 죽겠다는 신랑에게 담담한 척 말했다.

“이건 규니 대학 가면 물려줄 거야. 원래 명품은 대를 물려주는 거거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은 묵직한 그것을 모시고 다닐 자신이 없다. 명품에 대한 자세가 지나치게 묵직해서 인지. 고가라 그런건지. 선망이 진해서 인지는 모르지만 편하지 않은 저 가방이 언제쯤 손에 익을지 모르겠다. 

이전 08화 감성공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