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늙지도 않네.'
미키마우스. 주말 아침 유일하게 티브이를 볼 수 있는 시간을 쥐어준 캐릭터였다. 도널드 덕처럼 시끄럽지 않고, 욕심 없고 밝은 얼굴로 지혜로운 행동까지 해댔으니 나는 그런 미키에게 포옥 빠져들었다. 집에 있는 시계나 몇 가지 학용품들이 미키마우스로 채워졌고, 내 마음속에도 늘 작은 친구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마음속 ‘미키’는 나와 같이 생활했다. 내 행동을 마음속에서 똑같이 한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미키도 기지개를 켜고 같이 일어난다.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면 미키도 테이블에 팔꿈치를 대고는 창문을 보며 기도를 한다. 내가 밥을 먹으면 미키도 밥을 먹고, 책을 보면 미키도 작은 나무집 안락의자에 몸을 싣고는 책을 읽었다. 내가 달리거나, 눕게 되면 미키의 집이 흔들린다고 생각해 “미안해 미키!” 하고는 멈춰서 집이 정리될 시간을 주곤 했다. 빠져버린 서랍장도 다시 끼우고, 침대도 정리하게끔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로 이사하며 친척들과 떨어지게 되었고, 늘 혼자 있게 되면서 마음 속으로 만든 친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최근 ‘미키마우스 탄생 90주년 기념전’에 다녀왔다. 예전 같은 기분은 진작 없어졌지만 신기하다. 캐릭터 하나가 내 마음에 살았다는 게.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 90주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극 호감형인 미키를 보며 ‘너는 늙지도 않네.. 나는 40대를 앞두고 있는데’ 하며 씁쓸했다. 마음 속에 미키를 키우던 꼬맹이가 다른 꼬맹이를 데리고 전시장 이곳저곳에서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내 사진이 아닌 아이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 정작 아이는 그곳을 답답해했다. 직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만지지 마세요’를 말했고 나는 아이를 계속 통제해야 했었다. 키덜트를 위한 공간임을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 느꼈던 미키마우스와 내 딸이 느꼈던 미키마우스의 느낌은 확연히 다를 것 같다.
규니도 엄마가 된다면, 자기가 어린시절 좋아했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 하겠지, 규니가 가장 좋아하는 파란꼬마버스 타요에 대해 자신의 딸과 이야기 할 즈음엔 버스들이 하늘을 날고 있는거 아닐까 몰라, 콧망울에 힘을 주며 “엄마 어릴땐, 버스들이 모두 땅에 굴러 다녔어!”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