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형란 May 06. 2016

소에 대한 기억

원래 맹꽁한 건지, 그냥 맹꽁한 나이였는지

내 다섯 살의 오후는 언제나

언니의 놀림으로 채워졌다


저기 소가 넘어간다

시선은 늘 언니 손가락 끝을 따라갔어도

소는 어디 있는지,

산에는 유난히 느린 걸음의 해만 걸쳐 있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소가

서른 번쯤 산을 넘어갈 때쯤이면

왠지 그 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찾아오고

해지기 전에 꼭 봐야겠다는 생각에

어디, 어디 하는 목소리만 더 다급해졌다


날이면 날마다 지치지도 않고

우리집 앞산을 서른 번쯤 넘던 그 소는

내가 철드는 만큼 늙어가

그 야트막한 산도 하루에 몇 번 못 넘더니

급기야는 영영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올듯 말듯한 비로

마음이 먼저 추적추적 젖는 날에는

사라진 그 소를 불러내어

다시 한번 언니와 나란히 앉아

하염없이 속아 넘어가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