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맹꽁한 건지, 그냥 맹꽁한 나이였는지
내 다섯 살의 오후는 언제나
언니의 놀림으로 채워졌다
저기 소가 넘어간다
시선은 늘 언니 손가락 끝을 따라갔어도
소는 어디 있는지,
산에는 유난히 느린 걸음의 해만 걸쳐 있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소가
서른 번쯤 산을 넘어갈 때쯤이면
왠지 그 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찾아오고
해지기 전에 꼭 봐야겠다는 생각에
어디, 어디 하는 목소리만 더 다급해졌다
날이면 날마다 지치지도 않고
우리집 앞산을 서른 번쯤 넘던 그 소는
내가 철드는 만큼 늙어가
그 야트막한 산도 하루에 몇 번 못 넘더니
급기야는 영영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올듯 말듯한 비로
마음이 먼저 추적추적 젖는 날에는
사라진 그 소를 불러내어
다시 한번 언니와 나란히 앉아
하염없이 속아 넘어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