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먼저였는지, 술이 먼저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언제부터인가
바람 속에서 술기운이 느껴지고
바람이 불면 붉게 취기 오른 꽃들이
제 청춘이 다 지는 줄도 모르고
치마를 펄럭거리며 춤추는 것이 보였을 뿐이다
비를 머금은 바람일수록 술내가 강한 걸 보면
바람은 어쩌면 비에 담긴 술을
어디론가 날라만 가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네 웃음에 취한 것도 바람 부는 날이었고
네 흔들리던 고백도 실은
바람을 너무 많이 마셔서였다 하고
바람이 거센 날이면 유독
떠나거나 돌아오는 사람이 많아지기도 했다
지레 술이 오르는, 바람 부는 저녁이다
술 고픈 인생들 길을 나서고
벌써 취한 나무들 몸을 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