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MBC <놀면 뭐하니?>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의 공연이었다.
연주에 완전히 몰입한 그녀의 얼굴을 아주 타이트하게
잡은 화면이 나오자 하연이가 한 말이다.
“아빠아! 언니가아~~ 화가 났나 봐.......”
아내와 나는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몇 초 동안을 구르고 뒹굴며 쉼 없이 웃은 뒤,
웃음을 참으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푸하하하. 하연아 화난 게 아니고
올라오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저런 표정이 나오는 거고.
하연이한테는 좀 어렵찌요?”
클라이맥스가 지나고 고요하게 연주하는 장면에서
또다시 입을 떼는 하연이,
"엄마, 언니 졸리나 바.......“
계속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은 곡의 분위기에 맞게 피아노를 조용히
치려고 하는 거야. 졸린 게 아니고.”
다음 날 아침 하연이와의 대화가 불쑥 떠올랐다.
평소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예상대로였다.
오늘도 여전히 무표정.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거의 무표정하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아무리 재밌는 일이 생겨도
마음껏 웃음을 터트리지 못한다.
내가 있는 장소, 함께 있는 사람, 보내는 시간에 따라
온전한 나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뭐 내가 삶의 모든 순간을
무미건조하게 대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익숙한 모습을 굳이 다르게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하연이가 얼굴 표정에서 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낼 줄
알게 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연이가 “우리 아빠는 항상 화난 얼굴을 하고 있어요.”,
“우리 아빠는 잘 안 웃어요.”라고 하면 어쩌지.
웃고 싶을 때 마음껏 웃고,
울고 싶을 땐 마냥 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딸을 통해 또다시 배운다.
우리는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온전한 삶을 느낄 수 있다.
잃어버린 나 자신을 되찾는 일,
어느덧 메말라버린 감정을 끄집어내
자유로운 감정 표현을 하는 것,
한 번뿐인 생을 그저 즐기는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