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같은 직업을 가진 커플들이 모두 그러하겠지만,
동종업계 종사자가 부부가 됐을 때
장점과 단점이 극명히 나뉜다.
먼저 가장 큰 단점을 꼽아보면
서로 이 업계를 훤히 속속들이 안다는 것.
내가 아는 사람이 아내가 아는 사람이고,
조금 전에 내가 했던 일과 비슷한 일을 아내가 했었고
또 할 예정이다.
심지어 회사도 같은 상암동 1km 반경에 위치해 있으니,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기로 한다.
사내커플은 오죽하랴.
특히 치명적인 것은 노동의 강도에 대한 체감이다.
방송의 종류에 따라 어느 정도 하면 어느 정도 피곤한지
몸으로 느끼며 알고 있으니, 일이 많지 않은 날
나만 힘들다고 집안일에 요령을 피우기는 쉽지 않다.
그랬다간 고작 그거 하고 집에 와서 누워만 있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으니까.
조금 투덜거려보긴 했지만, 사실 장점이 더 많다.
가장 좋은 점은 일반 시청자들이 인식할 수 없는
디테일을 읽어내고 서로 얘기해줄 수 있다는 것.
방송에서 출연자에게 질문을 하다 왜 머뭇거렸는지,
멘트를 하다가 잠시 포즈를 둔 이유는 뭔지,
말하는 속도를 왜 갑자기 늦췄는지
혹은 왜 그리 빠르게 이야기를 이어갔는지,
내가 느끼고 있는 긴장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표정만으로도 아는 것 등이다.
디테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런 것들은 일의 전문성 향상에 크게 보탬이 된다.
좋든 싫든 이렇게 함께 방송으로 먹고사는 우리 집이기에
자연스레 거실의 TV는 켜져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둘 중 하나가 주말근무로 출근을 하게 되고
한 명이 남아 육아를 하게 되면,
그 시간은 어김없이 서로의 방송에 대한 모니터링
시간이 된다.
또 그러다 보니 딸아이에겐 TV에 나오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익숙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하연이가 아직 TV 속 사람들의 얼굴을
완벽하게 구분해내지 못한다는 거다.
TV 속 사람이 아나운서든 배우든 가수든 상관없다.
일단 스튜디오 비슷한 곳에 여성 진행자만 나오면
여지없이 죄다 “엄마다!”라고 소리부터 치는 것이다.
그때마다 저분은 하연이 엄마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고 설명을 해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친하게 지내는 동료 앵커가 나와도 “엄마다!”
기자 선배가 나와도 “엄마다!”
날씨를 전해주는 기상캐스터 후배가 나와도 “엄마다!”
뭐 집에서는 사실 괜찮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하지만 밖으로 나오면 조금 민망한 순간들이 있긴 하다.
가족들이 많이 모이는 MBC 앞 광장에는
대형 모니터가 여러 개 걸려있다.
아내가 먼저 주문을 하러 가고 내가 하연이와 둘이
야외 좌석에 자리를 잡았을 때.
그때 모니터의 여성 앵커를 가리키며 “엄마다!”를 외칠 때.
그리고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곧이어 아내가 커피를 들고 자리로 돌아올 때.
옆 테이블 사람들 탓인지, 기분 탓인지,
무엇 때문인지 내가 왠지 뭘 잘못한 거 같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지인들에게 왠지 미안하다.
사실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이와 유사하지만,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이런 상황에는 정말 민망해 죽을 지경에 이른다.
어린이집에 하연이를 맡기며
선생님과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는데,
“아버님, 어제 하연이가 어쩌다
제 휴대전화에 있는 현빈 사진을 보게 됐어요.
그런데 그걸 보고 아빠라고 하던데요? ^^;;;;;”
“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큰 물의를 일으켰네요. 죄송합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미안해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말 스포츠 뉴스를 진행할 때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다른 남자 선배 아나운서가 진행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내가 앵커를 맡고 있었다.
내가 집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평일 저녁,
스포츠 뉴스 시작을 알리는 신나는 시그널 음악이 나오자
김하연 씨가 또 외치신다.
“아빠다!!”
“아빠 아니야 하연아.”
라고 할 줄 알았던 아내는 신나서 한 술 더 뜬다.
“하연아 아빠가 잘 생겼어? 저분이 잘생겼어?”
“저 사람!!”
이번엔 미안한 마음이 1도 들지 않는다.
전쟁이다.
“야!! 김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