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진 Apr 03. 2020

아빠는 내가 지켜줄게

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제주 보름 살기를 할 때였다.
하루는 송악산을 다녀온 뒤

그곳의 돌풍이 참 무서웠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 무서워! 하연이가 지켜줄게”
  
“하연이가 누구를 지켜줄 건데?”

  
"아빠! “



내가 지켜줄게!




무서운 게 정말 많아졌다.


집 앞의 슈퍼마켓을 가는 일이나 버스를 타는 일,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일 등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행동들의 느낌이 완전히 바뀌었다.
특히 코로나 19 속 지금 상황에는

더더욱 모든 것이 공포스럽다.


사소하지만 이제는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

무서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결혼 전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군에서 훈련을 받으며 10m 높이에서 수면으로 뛰어들고 200m 거리의 활차를 탔을 때도

무섭기보다는 오히려 신이 났다.
첫 차를 장만하고 차량이 뜸한 고속도로에서 스피드를

느끼며 위험천만한 운전을 할 때도 즐기기 바빴다.
스키나 번지점프 같은 레저는 시간이 없어 못했지

지금처럼 다치는 게 두려워 몸 사리지 않았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모든 것이 변했다.
삶의 모든 순간이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었다.
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잠재적 위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켜주다’라는 네 글자가

이렇게 큰 의미로 다가온 것도 처음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연인에게 던지는 회심의 명대사인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아름답고 신성한 말이자

두려움까지 내포한 단어라는 것도 이제야 깨달았다.


누군가를 반드시, 꼭 지켜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다.
  
“아빠가 지켜줄게.”

이 말을 얼마나 많이 했으면

36개월도 안 된 딸이 아빠를 지켜준다고 했을까.


당분간은 계속 이 말을 아이에게 하겠지.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딸을 지켜주는 순간이 오면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지켜줄 수 없을 거다.


오히려 내가 보호받는 대상이 될 것이기에.
 

그날이 오면 딸이 내게 다시 이야기해주겠지.
  


“하연이가 지켜줄게.”





하연이가 처음으로 아빠를 지켜준다 했던 순간의 영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