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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Mar 16. 2020

우리 아빠는 백수

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하연이 아빠는 뭐하는 사람이야?”


"음......."



친구랑 노는 사람!”


아빠 백수야?




이제는 연기된 2020 도쿄올림픽을

약 200일 정도 앞두고 있었던 지난겨울,

1주일에 한 번씩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을 찾았다.


선수들이 어떻게 올림픽을 준비하는지 담기 위해

매주 다른 종목의 훈련장을 방문해 선수들을 인터뷰했고,
선수들의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쉽게 전하기 위해

일반인인 내가 선수들의 고강도 훈련을

직접 체험해 보기도 했다.
 
양궁이면 직접 활시위를 당겨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쏴보기도 하고, 다이빙 취재를 가서는 5m 높이의 스프링보드에서 뛰어내려 보기도 했다.


격투 종목이 가장 힘들었는데,

싸움과는 거리가 먼 내가 펜싱, 유도 국가대표 선수들과
찌르고 베고 넘기고 메치며 대련을 해보기도 했다.
  
어느 날 아내가 그 프로그램의 ‘유도’ 편을 하연이와 함께 봤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 그걸 보자마자 장인어른과 영상통화를 했는데 장인어른께서 이렇게 물으셨다 했다.
 
“하연아 아빠는 어디 갔어?”
 
“회사!”
 
다시 질문을 던진 장인어른.
   
“하연이 아빠는 뭐하는 사람이야?"
  
곰곰이 생각하다 답을 던진 하연이.
 
“음.......”


“친구랑 노는 사람!”
  
유도의 특성상 구르고 메치고 들고 당기고 밀쳐내는

훈련이 많았는데, 아빠가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뒹구는 모습을 본 하연이는 그게 그저 친구들하고

노는 것인 줄 알았나 보다.

그런데 사실 아나운서는

어떻게 보면 잘 놀러 다니는 직업이 맞긴 하다.
아나운서를 꿈꾼 이유 중의 하나도 그것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합법적으로 놀 수 있으니까.
  
스포츠 캐스터는 좋아하는 스포츠를 보며 중계를 하고,
영화 프로그램 MC는 남들이 쉴 때나 놀 때 하는

영화 감상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예능의 세계에 뛰어든 사람들은 온몸을 불사르며 웃기게 놀아야 하니,
아나운서인 아빠는 친구들과 노는 사람이 맞는 거다.


그리고 하연이는 아빠가 일하고 있지만 사실 놀고 있다는

이 소름 돋는 사실을 단번에 간파한 거다.

소오름~.
  
하지만 다들 그렇듯
노는 것도 일이 되면 힘들고 지치게 된다.
꿈꾸던 직장에 들어가도 시간이 흐르면

회사는 회사일 뿐인 것이 우리의 현실.
  
이 얘기를 아내로부터 전해 듣고 소심해진 나는
아빠가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실하게

인식시켜주고 싶었다.
안 그러면 동네방네 아빠는 놀러 다니는 사람이라고

떠들 거 같았다.
수다쟁이 김하연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출근 전 아빠를 보며 또 회사 가는 거냐고 묻는 하연이를 붙잡고 단단히 얘기해 둔다.
  
“하연아. 아빠 놀러 가는 거 아니야. 일 하러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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