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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Mar 23. 2020

오빠와 아저씨를 구분하는 확실한 기준

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블록 놀이를 하고 있던 하연이가
뜬금없이,



“엄마, 아줌마야?”


김하연 아줌마.




출산하고 나서 아내가 가장 기뻐했던 모습을 떠올려보니
다름 아닌 집 앞 편의점을 다녀와서 보여준 얼굴이었다.

"오빠! 나 오늘 맥주 사는데 신분증 검사를 했어!"

아내의 설명에 의하면
행사하는 맥주 4캔을 결제하려는데
편의점 직원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며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는 거다.

집 앞에 나간 거니 신분증 챙기는 건 생각도 못했고,
다시 집에 왔다가는 건 너무 귀찮으니

설득을 열심히 했다고 했다.


나는 서른도 넘었고 직장인이며 딸도 있다고 설명을 하니
그제야 다음에 와서 신분증을 꼭 보여달라고 말씀을

하시곤 결제를 해줬다고 했다.

그때의 들뜨고 설렜던 아내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그랬던 아내가.......


딸내미가 퍼부은 갑작스러운 아줌마 공격에

완전한 굴욕을 맛보고야 말았다.

무엇 때문에 생각이 난 건지,

"엄마, 아줌마야?"라고 훅 들어온 딸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아내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하나씩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하연아, 아줌마랑 언니가 뭐가 다른데?"

"......."

36개월도 안 된 딸아이가 그걸 설명할 수 있으리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대답을 얻고자 한 물음이 아니었다.
그저 다그치는 것일 뿐이었다.

"하연아 그럼 아빠는? 아빠는 아저씨야?"

"응!"

대화를 지켜만 보던 나도 슬슬 열 받았다.
뭐 군대 시절부터 아저씨란 말은 계속 들어왔지만
아직 만 30대인데4월이면곧만40대인건비밀 

굳이 확인 사살을 할 필요까지는 없는 거 아닌가?

나도 아내처럼 하연이에게 한 명씩 확인해보고 있었는데,
마침 TV 화면에 배우 공유 씨가 나왔다.

순간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쳐지나 간 생각은
공유는 나랑 같은 학번 연예인이라는 것.
그러면 대답은 당연히 아저씨가 아닐까 하는 것.
그렇다면 이 세상은 아직 살만 하다는 것.

재빠르게 내가 물었다.

"하연아 저 사람은 오빠야 아저씨야?"

조금이라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하연이.


"오오~ 빠!"


엄마와 아줌마, 아빠와 아저씨를 구분하는 기준을

설명할 수는 없어도
확실하고 정확한 선이 있는 것은 분명한가 보다.

세상은 역시 불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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