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출산하고 나서 아내가 가장 기뻐했던 모습을 떠올려보니
다름 아닌 집 앞 편의점을 다녀와서 보여준 얼굴이었다.
"오빠! 나 오늘 맥주 사는데 신분증 검사를 했어!"
아내의 설명에 의하면
행사하는 맥주 4캔을 결제하려는데
편의점 직원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며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는 거다.
집 앞에 나간 거니 신분증 챙기는 건 생각도 못했고,
다시 집에 왔다가는 건 너무 귀찮으니
설득을 열심히 했다고 했다.
나는 서른도 넘었고 직장인이며 딸도 있다고 설명을 하니
그제야 다음에 와서 신분증을 꼭 보여달라고 말씀을
하시곤 결제를 해줬다고 했다.
그때의 들뜨고 설렜던 아내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그랬던 아내가.......
딸내미가 퍼부은 갑작스러운 아줌마 공격에
완전한 굴욕을 맛보고야 말았다.
무엇 때문에 생각이 난 건지,
"엄마, 아줌마야?"라고 훅 들어온 딸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아내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하나씩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하연아, 아줌마랑 언니가 뭐가 다른데?"
"......."
36개월도 안 된 딸아이가 그걸 설명할 수 있으리라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대답을 얻고자 한 물음이 아니었다.
그저 다그치는 것일 뿐이었다.
"하연아 그럼 아빠는? 아빠는 아저씨야?"
"응!"
대화를 지켜만 보던 나도 슬슬 열 받았다.
뭐 군대 시절부터 아저씨란 말은 계속 들어왔지만
아직 만 30대인데4월이면곧만40대인건비밀
굳이 확인 사살을 할 필요까지는 없는 거 아닌가?
나도 아내처럼 하연이에게 한 명씩 확인해보고 있었는데,
마침 TV 화면에 배우 공유 씨가 나왔다.
순간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쳐지나 간 생각은
공유는 나랑 같은 학번 연예인이라는 것.
그러면 대답은 당연히 아저씨가 아닐까 하는 것.
그렇다면 이 세상은 아직 살만 하다는 것.
재빠르게 내가 물었다.
"하연아 저 사람은 오빠야 아저씨야?"
조금이라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하연이.
"오오~ 빠!"
엄마와 아줌마, 아빠와 아저씨를 구분하는 기준을
설명할 수는 없어도
확실하고 정확한 선이 있는 것은 분명한가 보다.
세상은 역시 불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