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지난가을 야심 차게 기획했던 제주 보름 살기.
출발하기 전에는 마냥 들떠있었고,
도착해서 며칠 동안은 예상대로 너무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공간에 세 식구가 매일 붙어있는 것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원룸 정도 크기의 공간이 복층으로 되어있는
키즈 펜션에 머물렀는데,
1층에는 거실과 주방, 화장실이 있었고
2층에는 성인이 완전히 몸을 펼 수 없는,
세모 모양의 지붕을 가진 다락방 형 침실이 있었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문 여닫는 소리와 "쪼르륵~" 볼일 보는 소리마저
2층 침실까지 생생하게 전달되는 구조이다 보니,
나만의 공간 따위는 전혀 바랄 수 없었다.
나만의 시간 역시 당연히 꿈꿀 수 없었고.
처음 며칠은 무척 좋았지만 우리 부부도 사람인지라,
하루 24시간을 내내 붙어있으니 서로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인간 본연의 짜증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론 독립적 인간으로서 가지게 되는 이 본능적인 감정,
'나'라는 인격체를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이 감정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임을
나는 언제나, 강력히 주장한다.
그래서 내놓은 궁여지책,
각자 돌아가면서 하루씩 홀로 나가 제주 여행을 하고
한 사람이 펜션에 남아서 독박 육아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계책마저 실행하기로 한 첫날부터
가을 제주의 굵은 빗방울과 돌풍에 가로막히며
우리는 제주에서의 보름을 한 순간도 떨어짐 없이
내내 붙어 있게 됐다.
하지만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리 부부는 절대 딸아이 앞에서는 싸우지 않기로
무언의 합의를 본 상태였기 때문에,
폭풍전야, 일촉즉발의 긴장감만이 흐를 뿐
다툼까지는 가지 않았다.
평소 ‘조금 떨어질수록 부부 사이가 더 좋아진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었던 우리였기에,
‘가족’이나 ‘부부’ 같은 말 이전에 그냥 ‘나’라는 사람,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를 존중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당시 32개월이었던 하연이는
우리의 그 묘한 기류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엄마와 아빠가 뭔가 틀어져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하연이가 항상 그랬듯,
본질 그대로를 마주하며
가장 어렵고도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해줬다.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것.
택시 안에서 엉겁결에 며칠 만에 손을 잡게 된 우리 부부,
아내가 먼저 어색한 공기를 바꿔보려고
하연이를 바라보며 쓸데없이 되물었다.
“하연아, 엄마랑 아빠 왜 손 잡으라고 했어?”
아무 대답도 않고 쿨내 진동하게
그냥 창밖을 바라보던 하연이를 보고 나니,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자연스레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되었다.
있었지만 있지 않았던 다툼이 자연스레 녹아내린 택시 안.
인생은 고작 32개월밖에 살지 않았지만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듯한 딸아이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붙잡은 손을 조금 더 꼬옥 쥐었다.
p.s>
나는 올해 연말에도 제주 살기를 또 하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기간은 좀 더 길게.
단, 방법은 다르게.
"여보! 내가 하연이 데리고 3주 동안 살아볼게.
여보는 주말에만 내려와서 놀다가!
싱글 때처럼 육아 없는 직장 생활도 한번 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