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 줄 알았다.
회사를 땡땡이치고 빵집에 가면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사유가 발생하는 것 아닐까
골똘히 생각해봤다.
하지만 딸내미는 오늘도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회사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지.
그냥 집 앞 빵집 가서 빵 먹으면 되잖아.’
이 명쾌한 논리 말이다.
물론 평소 즐겨 먹는 라이언 초콜릿을 먹고 싶어서
그런 이야기를 던졌을 수도 있지만.......
하기 싫으면 그냥 안 해본 것이 언제 적의 이야기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덧 내게는 너무나도 많은 의무와 책임이 짊어져있다.
하루라도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는 내게
딸아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만약 내가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출근도 안 하고,
하연이 먹일 밥도 안 하고,
회사 선배와의 점심 약속도 취소하고,
그 무엇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하루쯤은 그 무엇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
아니 확신이 들었다.
회사엔 갑작스레 휴가를 내게 됐다 하면 되고,
하연이 먹일 밥은 아내에게 부탁하거나 배달시키고
약속이야 다음으로 미루면 되니까.
내가 무겁게 짊어지고 있다는 의무와 책임은
다 내가 자청해서 메고 가는 것일 뿐.
누구도 내게 그리 힘들게 지고 가라 강요한 적 없었다.
이렇게 딸아이의 논리에 완전히 설득당한 뒤,
곧바로 시행을 계획해봤다.
언제가 적기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또 이것저것 따지기 시작했다.
이 날은 라디오 녹음이 있어서 안되고,
저 날은 하연이가 병원에 가야 해서 안되고,
그 날은 내가 치과에 가야 하니 안되고.......
이랬다간 또 원점이다.
그냥 한번 도전해 보련다.
회사에 가기 싫어 견딜 수 없는 날,
아무 생각 없이 빵집에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