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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Apr 02. 2020

회사 가기 싫으면 빵집에 가야 하는 이유

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아침 준비를 하다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있는 딸에게 말을 걸었다.
  
“하연아 아빠 오늘 진짜 회사 가기 싫다.......”
  
“그럼 빵집에 가.”
  
“응? 빵집엔 왜?”
  
 
“빵 사러 가자!”
  

사실은 초콜릿 먹고싶어서 가자 한 거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 줄 알았다.
   
회사를 땡땡이치고 빵집에 가면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사유가 발생하는 것 아닐까
골똘히 생각해봤다.
   
하지만 딸내미는 오늘도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회사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지.
그냥 집 앞 빵집 가서 빵 먹으면 되잖아.’
   
이 명쾌한 논리 말이다.
물론 평소 즐겨 먹는 라이언 초콜릿을 먹고 싶어서
그런 이야기를 던졌을 수도 있지만.......
   
하기 싫으면 그냥 안 해본 것이 언제 적의 이야기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덧 내게는 너무나도 많은 의무와 책임이 짊어져있다.
하루라도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는 내게

딸아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만약 내가 오늘 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출근도 안 하고,
하연이 먹일 밥도 안 하고,
회사 선배와의 점심 약속도 취소하고,

그 무엇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하루쯤은 그 무엇도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
아니 확신이 들었다.
   
회사엔 갑작스레 휴가를 내게 됐다 하면 되고,
하연이 먹일 밥은 아내에게 부탁하거나 배달시키고
약속이야 다음으로 미루면 되니까.


내가 무겁게 짊어지고 있다는 의무와 책임은
다 내가 자청해서 메고 가는 것일 뿐.

누구도 내게 그리 힘들게 지고 가라 강요한 적 없었다.
  
이렇게 딸아이의 논리에 완전히 설득당한 뒤,
곧바로 시행을 계획해봤다.
언제가 적기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또 이것저것 따지기 시작했다.
  
이 날은 라디오 녹음이 있어서 안되고,
저 날은 하연이가 병원에 가야 해서 안되고,
그 날은 내가 치과에 가야 하니 안되고.......
 
이랬다간 또 원점이다.
  
그냥 한번 도전해 보련다.
  
회사에 가기 싫어 견딜 수 없는 날,
아무 생각 없이 빵집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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