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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진 Mar 25. 2020

아빠의 장래희망 (feat.내 꿈은 어린이야)

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하연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어린이......."



"지형이는 이렇게 한 발로 서니까."


한 발로~ 영차!




요즘엔 '언니'로 바뀌었지만
사촌 오빠인 8살 지형 군이 올 때마다
딸아이의 장래 희망은 '어린이'였다.

'오빠'라는 호칭이 입에 잘 붙지 않았는지
항상 '지형이', 지형이'라고 했고,
그럴 때마다 엄마, 할머니, 고모 할 것 없이 모두가
'지형이 오빠'라고 바로 잡아주었다.

지형이가 한 발로 서서 기도하는 요가 자세,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달심 자세를 보여주었는데
하연이는 그게 그렇게 하고 싶었나 보다.

아직은 한 발로 중심 잡기가 어려운 나이다 보니
그 어려운 걸 쉽게 척척 해내는 '어린이' 지형 군이
부러웠을 노릇.

조금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린이' 보다는 '언니'가

되고 싶어 한다.
성별에 따른 호칭도 알게 되었고 어린이보다는
더 구체적으로, 언니들이 하는 게 멋있어 보이나 보다.

그렇게 멋져 보이는 게 많고,
되고 싶은 게 많아지는 것 자체가 부럽다.
이미 어른이 돼버린 나는 언젠가부터 되고 싶은 게

딱히 없어져버린, 꿈꾸지 않는 사람이 돼버렸으니까.

하지만 하연이의 꿈들에서부터 출발해 또다시

굳이 할 필요 없는 쓸데없는 걱정이 툭 튀어나왔다.

하연이가 "아빠는 뭐 되고 싶어?"라고 물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하기엔 조금 창피했으니까.

처음엔 억지로 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연이의 꿈이 바뀌는 걸 볼 때마다
나도 자연스레 되고 싶은 게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하고 있는 일들에는 수식어를 붙여보기 시작했다.

그냥 아빠, 그냥 남편 말고 '멋진 아빠' '좋은 남편'
그냥 아나운서 말고 '기억에 남는 아나운서'
그냥 선배 말고 '의지하고 싶은 선배'
그냥 작가 말고 '따뜻한 작가'

마흔을 넘긴 나에게도 장래 희망이

마구마구 생겨나기 시작했다.


언젠가 하연이가 내게 물어보는 날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자랑을 늘어놓아야겠다.

아빠는 이렇게나 꿈이 많으니 너도 어서 분발하라고.


궁금해진다.
하연이가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게 되면

얼마나 많은 꿈의 조합이 탄생될지.


그리고 얼마 전 하연이는 또 새로운 꿈이 생겼나 보다.


"하연이 뭐 되고 싶어?"



"어린이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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