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의 말로 아빠도 자란단다
종이접기 놀이를 하던 딸이 말했다.
"아빠 이번엔 아이스크림 만들어주세요!"
딸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나는 곧 노랑, 검정, 초록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었다.
"하연아 노랑은 레몬, 검정은 초콜릿, 초록은 멜론 아이스크림이야!"
"고마워 아빠! 근데 나 따뜻한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에에엥? 따뜻한 아이스크림?"
"응 아빠. 아이스크림은 너무 차갑잖아. 그러니까 내가 데워줄게!"
따뜻한 아이스크림이 있을 수 있다면 어떤 맛일까.
표현 자체가 모순인 말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세상이 참 놀랍고도 부럽다.
어느덧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은 그곳이 어디였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왜?'라는 질문이 허용되지 않던 학창 시절을 보내며
책에 적혀있는 대로, 윗사람이 말하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며 어른이 되었다.
이미 정의라고 정해진 것들에 의문을 품지 않는 아이가
칭찬받았고,
엉뚱한 상상을 하거나 선생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다른 행위가 아닌 틀린 행동이었다.
어느덧 상상도 정해진 틀 안에서만 할 수 있는 나 같은 어른은 아이들에 비해 너무나 작은 세계에 갇혀있는 거 같다.
따뜻한 아이스크림 같은 표현이 또 뭐가 있을까 떠올리려 노력해봐도 한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 건,
이제는 더 이상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아 슬프다.
우리 아이들만큼은 무엇이든 가능한 그 신비로운 세상의 문을 닫지 않기를 바란다.
혹여나 언젠가 그 문이 닫히더라도, 최대한 늦게, 내 세상의 크기를 최대한 넓게 펼쳐놓은 뒤 닫힐 수 있기를.
언제든 돌아갈 수 있게 잘 보이는 곳에 큼지막한 이정표도 하나 세워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