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치부자 Nov 08. 2024

40분 만에 매출 3억을 벌었다.

근 40년 만에 처음 느낀 아부지 사랑의 정체

이것은 소소하지만 진실된 내 삶의 기록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닿길 기도해 본다.




환수금액 64,858,530원?!



나는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 CEO이다. 운 좋게도 정부지원사업에 계속해서 선정되고 투자도 조금 받았다.

그렇게 작년에 약 1.5억 규모의 R&D 정부지원사업에도 선정이 되었다.


R&D는 유망한 기술개발 과제여야 받을 수 있는 거라, 선정되고 나니 기쁘기고 하고 좀 얼떨떨했다. 그리고 올해 4월 과제 개발기간이 끝났다. 통상 정부지원사업은 나랏돈을 쓰는 거라, 끝나고 항상 사업비 정산(회계감사)을 진행하고, 회계감사보고서를 받는다.


그런데, 과제가 끝난 지 2달이 되어도, 1달의 유예기간을 더 가진 7월에도 회계감사보고서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사이에 회계감사를 진행하는 회계법인에서 요청하는 소명 자료를 일일이 대응하며,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8월 2일 자로 받아본 회계감사 보고서에는 불인정 금액이 64,858,530원이라고 떡하니 쓰여있었다. 오 마이갓! 6천4백만 원? 이걸 다 내야 한다고?

으,, 하나님 살려주세요.


왜냐하면 사업비가 제대로 소명되지 않아 불인정이 되면, 그 금액만큼을 고스란히 다 뱉어내야 되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정확히는 '사업비 환수'라고 한다. 수십 차례 정부지원사업 하면서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던 나에게는 불명예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그동안 열심히 소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다.


다행히, 사업비가 불인정된 금액에 대해서 이의신청 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이의신청을 한다고 다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지만, 나는 회사대표로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64,858,530원을 방어해야 했다.


이의신청을 하고 한 달 여가 지난 10월 마지막날 나는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이의신청 검토위원회가 열리는 곳은 대전인데, 우리 집에서 한참 멀기도 하고, 출근시간 이슈가 있어 마음이 먼저 달렸다.


현재 아이 둘을 혼자 케어하다 보니 아이들 등원 전에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보통 일정을 바꾸거나 하는데, 이의신청은 배정된 시간 변경이 불가능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친정엄마 댁이 있지만, 지금은 전혀 소통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 이모님을 하루 부를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나는 귀농해서 한 시간 반 거리에 떨어져 있는 아부지에게 SOS를 보냈다.



▼아래글 참고 '친정엄마와이 대화가 항상 불편한 이유'

https://brunch.co.kr/@war-rabbit1085/40

 




아버지, 아빠, 나의 친정 아부지


우리 아부지를 소개하자면, 옛날에는 참 호랑이 같이 무서운 인물이었다. 나는 항상 아부지 앞에서 말할 때 숨이 차고 달달 떨면서 얘기를 했다. 아부지는 으레 옛날 아부지들처럼 손하나 까닥 않고 집안일에 무심하며, 경상도 남자답게 버럭을 자주 시전하셨다. 친하지도 않은데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니, 아부지는 나의 유년시절 최대 적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아웃오브안중이었다.


그랬던 아부지가 60이 되고, 70이 넘으시더니 귀농 후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 덕인지, 본인의 자식들에게 잘해도 칭찬하지 않고, 못한 것은 크게 혼냈던 그 과거가 계속해서 마음에 쓰인다고 하셨다.


어찌 보면 굉장히 고지식할 것 같았던 나의 아빠는 이전과 점점 다른 모습의 아부지가 되었다. 아부지는 철저한 유교보이라 나와 친정엄마의 관계를 처음에는 가족이니까, 엄마니까 라며 억지로 풀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아시고, 엄마와 관계는 천천히 지켜보기로 하자고, 다만, 아부지한테는 힘든 거 있으면 무엇이든 부탁하라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다.


이의신청을 하러 가기 전날, 아부지는 시골에서 고구마, 밤 한 박스를 싣고 올라오셨다. 아이들을 직접 픽업해서 친정 엄마 댁에서 저녁을 먹이셨다. 다시 데려다주시면서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OO아, 혹시 사업비? 그거 금액 인정 안되면 아빠가 다 책임질게, 그러니까 아무 걱정도 말고 내일 가서 자신감 있게 하고 와."


아부지께 신세 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말씀만이라도 그렇게 해주시니 정말 감사했다.

그리고 이의신청 하러 가는 날 아침 7시 딩동! 아부지가 오셨다.


아이들이 먹을 간단한 아침, 입을 옷가지를 꺼내놓고, 일어나는 시간, 나가야 하는 시간을 말씀드렸다. 헷갈리실까 봐 아이들 칫솔에 치약도 미리 짜놨다. 둘째 딸의 머리손질이 고민되었지만, 대충 묶고 보내면 유치원에서 알아서 해주시지 않을까... 하며


아부지가 오셨는데 설거지도 안 해놓고, 좀 어질러진 집안 모양새가 왠지 부끄러웠다.

보통 식사 후 바로 하는 설거지가 그날 따라는 좀 있었는데, 다 하고 가자니 왠지 마음이 급했다.

아이들 과일을 챙기려고 싱크대 앞에서 서성이는 나를 보던 아부지는


"괜찮다, 놓고 가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서둘러 준비를 한 나를 보고는

"니 그렇게 입으니까 꼭 아가씨 같네."


멋쩍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맨날 헐렁한 바지박스티 입은 모습만 보시다가 그나마 갖춰 입은 모습을 오랜만에 보니 반가워하셨던 같다.


"저 아직도 나가면 사람들이 20대로 보기도 해요."

아부지 앞이니까 나도 모르게 으레 으쓱 자랑질을 했다.


곤히 잠에 떨어진 아이 둘을 살피고 나는 길을 나섰다.

아부지는 나를 따라 마중도 나와주셨다.


"잘하고 와. 조심히 다녀오고."

"네에, 잘하고 올게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아부지 앞에서는 왠지 씩씩한 척하게 되는 그런 것도 있다. 여전히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7시가 넘어서니 출근길과 맞물려 차가 조금 막혔다. 그럼에도 다행히 시간이 많이 남아 휴게소에 들러 커피도 한잔, 호두과자도 사 먹고 기름도 넣고 사치스러운 여유를 부렸다. 도착해서도 한 시간이 남아 차에서 잠을 청했다.


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잠깐이라도 자면 머리가 맑아지고 휴식이 돼서 자주 쪽잠을 자곤 한다. 한숨 자고 나니 어느덧 이의신청 발표 시간이 되었고, 나는 발표장으로 씩씩하게 들어갔다.  막상 가보니 이의신청을 서면으로 대체한 기업도 여럿 있어 약간 부럽기도 하고 그랬다. 나는 64,858,530원 1원도 양보할 없었기 때문이다.



발표 20분, Q&A 20분.

평가위원분들이 보실 자료도 미리 출력해서 가져가고, 성의 있게 PPT 자료도 만들었다.

우리가 얼마나 개발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했는지, 그리고 회계감사 기간 동안 얼마나 충실히 소명했는지, 불인정 금액 64,858,530원에 대한 사유가 왜 타당하지 않은지, 눈물 콧물 손짓 발짓 써가며 열심히 어필했다.


분위기는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발표를 마치고 서둘러 돌아왔다.

그러던 중 뒤늦게 아부지의 문자를 발견했다.

참 일처리가 깔끔한 아부지시다. 나는 아부지에게 '최고예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왠지 공기가 달랐다.

엥?


설거지 통을 보니까 깨끗하게 다 설거지가 되어 있다. 바닥도 깨끗해진 것 같았다. 나는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청소의 흔적을 발견했다. 아부지가 아이들을 보내시고 집안 청소와 정리까지 해놓은 것이다. 아부지와 함께 보낸 근 40년의 가까운 시간 동안 난생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아부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부지, 설거지랑 해놓으셨어요?"

아부지 왈 "아, 그거 조금 있어서 그냥 했지. 어허허. 오늘 발표 잘했나?"

"네에,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어요. 잘될 것 같아요. 아, 너무 감사해요, 아부지"



전화를 끊고서 한참 멍하지 집안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자라면서 아부지한테 어떤 형태로든 많은 사랑을 받긴 했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성숙한 사랑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아부지는 항상 이 사랑을 마음에 품고서 서툰 방식으로 표현해 왔을 생각을 하니 왠지 코끝이 찡했다.


그날 저녁, 둘째 딸에게 "할아버지가 등원시켜 주니까 어땠어?" 하고 물으니,

"응, 할아버지 다 좋은데 머리 하는 건 좀 제법이 아니던데~."

그래서 한참을 웃었다.




환수금액 결과 : 64,858,530원 →?? 원


그리고 며칠 뒤, 아이들 하원뒤 함께 장을 보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정산 이의신청 결과가 나왔다는 문자였다. 나는 얼른 들어가 확인했다. 밖이라 대충 확인해 보니 인정이 되었다는 것 같았다. 신이 나서 둠칫둠칫 춤을 추며 깡충깡충 뛰었다.

아이들이 나를 보며 "엄마, 왜 그래?" 하고 물었다.

"아, 엄마 잘 되었으면 하고 바라던 일이 있는데 잘 해결되었어. 오늘 저녁에 가서 신나는 떡볶이 파티하자!"


집에 가서 컴퓨터로 다시 한번 더 확인하니 불인정 금액이 0원으로 되어 있었다. 기쁜 마음에 눈을 비비고 여러 번 보았다. 분명 0원이었다.

영업이익으로 6,500만 원을 내려면 이익률을 20%로 잡아도 최소 매출 3억은 된다.

비용을 6,500만 원 줄였으니 매출 3억을 올린 셈 아닌가! :)

(억지스러웠다면 죄송합니다.)



아이들과 저녁 식사 후 아부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부지, 이의신청 결과 나왔어요. 다 받아들여줘서 0원 됐어요."


수화기 건너편에서 안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 그래도 결과가 어떻게 됐나 싶어서 걱정이 되는데, 물어보기도 그렇고 해서 생각이 나더라고. 이야~잘되었다니 오늘 들었던 얘기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소식이네!"


기뻐하는 아부지 목소리를 듣고 신이 난 나는 발표는 이렇게 저렇게 했고, Q&A는 어떻게 했고 하면서 한참 영웅담 같은 썰을 풀어놓았다. 아부지는 재미난 듯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통화한 후,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씻기고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감사합니다!"

매번 하는 기도이지만 농밀하게 절로 기도가 나왔다. 불인정 금액이 64,858,530원에서 0원이 된 것도 정말 정말 기뻤지만, 그 과정에서 예상치도 못하게 경험한 아부지의 사랑에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우리 모두는 혼자가 아니다. Pay it forward. 



덧붙여, 이의신청 발표 장소에 도착할 즈음 마침 교회 사모님이자 간사님인 '언니'의 전화가 왔었는데, 평소 기도부탁도 왠지 부담 주는 같아 안 하던 내가 기도를 부탁드렸다. 기도라는 말이 왠지 '사랑'처럼 들려왔다.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참 사랑이라는 건 사람 마음을 기분 좋게 간지럽힌다.

사랑이라는 건 '기도'가 될 수도 있고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 내미는 '손'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몸짓'일 수도 있구나.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욕망이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충실히 살자. 이것 또한 나를 응원해 주는 이들에 대한 내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이 경험되니 저절로 흘러나오게 된다. 나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닿길 바라며.


Pay it forward.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이전 01화 친정엄마와의 대화가 항상 불쾌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