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방귀는 뀌어도 되요??
왜 사람들은 질문을 안 할까?
대부분 주변의 눈치를 본다.
‘나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는 궁금한 게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다.
강의가 끝나면 강사는 질문을 유도하지만,
서로 눈치를 보느라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다.
‘나만 이해 못한 거면 어쩌지?’ (동공지진)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이다가 결국 타이밍을 놓친다.
그러다 누군가 나와 같은 질문을 한다.
강사는 "좋은 질문이에요~" 하며 답을 시작한다.
그 순간, 후회가 밀려온다.
‘나도 그냥 물어볼걸...’
공감하는 분들, 분명 있을 거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궁금증을 안고 산다.
“엄마, 저건 뭐야? 엄마, 이건 또 뭐야?”
질문이 쏟아진다.
나도 아이를 키워봤기에 그 시절을 지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조금 더 잘 설명해줄걸 하고 후회되기도 한다.
특히 아들은 질문이 많았다.
당황스러운 질문도 많았다.
예를 들어, 장애를 가진 분이 앞에 계신 상황에서
“엄마, 저 아저씨는 팔이 왜 저래?”
“엄마, 저 아저씨는 다리가 왜 저래?”
물론 아이 입장에선 처음 본 모습이 궁금한 건 당연한데,
나는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고, 부끄러웠고, 죄송했다.
몇 번은 지인의 안내로 아들과 함께 성당에 갔다.
마침 부활절이라 삶은 달걀에 그림을 그리는 체험을 했는데,
그게 너무 인상 깊었는지
성당에 갈 때마다 “오늘은 왜 달걀 그림 안 그려?”라고 묻곤 했다. �
설명을 몇 번이나 해줬지만
아들은 매번 당당히 또 물었다.
(내 설명이 부족했던 걸까?)
그리고 미사 중에도 계속 질문을 해서
“기도하는 시간에는 조용히 해야 해~ 말하면 안 돼.” (작은 소리로)
라고 이야기했더니, 아들이 한마디.
“그럼 방귀는 껴도 돼??” (큰 소리로)
정숙하던 성당 안,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빵~ 터졌다.
우리는 분명 모두 어린 시절,
우리 아이처럼 질문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지금도 새로운 공간에 가면 질문이 많다.
궁금증을 가슴에 담고 그냥 지나치기엔
세상은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하니까.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잘못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당당히 질문하자!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자!!
누군가 망설이고 있을 그 질문,
내가 대신 해보자!
질문을 통해 우리는 오늘도 성장할 것이다.
가끔은 스스로에게도 질문해보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뭘까?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어떤 모습일까?
질문하다 보면, 또 다른 나를 만날지도 모른다.
이 또한 얼마나 소중한 발견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