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아리 Jun 14. 2024

어쩌다 이렇게 아파졌냐면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년 전. 팀장이 막 팀장이 되었을 때, 나는 그의 팀원이 되었다. 대리조차 달아 본 적 없던 그는, 이 조그마한 회사에서 덜컥 팀장부터 달아 버렸다. 그래서인지 그는 무엇인가에 시달리는 듯했다. 팀장으로서의 자질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인지, 증명해 보이겠다는 욕심인지.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와 그의 업무 능력은 제법 비슷했고, 어쩌면 우리는 환상의 팀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나를 견제하고 질투하기에 바빴다. 그는 홀로 빛나기 위해, 자신을 더 밝히기보다는 나의 빛을 꺼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주변 동료들에게 내 험담을 하고 다녔고, 숨 쉬듯이 나를 가스라이팅 했다. 나는 그의 바람대로 모든 기운을 그에게 빼앗긴 채, 점차 생기를 잃어갔다. 한없이 무너졌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와 나 사이의 간극에는 오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오해는 어쩌면 바다 같기도 했다. 투명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물결 너머의 것을 왜곡해서 비추었다. 그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안 좋게 받아들였다. 오해라는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치며 나를 덮쳤다.


“조금이라도 웃으며 대화할 수 있을 때 팀을 옮기는 게 어때요? 그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은데.”

“저는 팀장님이랑 잘 지내 보고 싶어요. 그래도 제가 팀을 옮기길 바라시면, 그 선택에 따를게요.”

“왜 제가 그 선택을 하게 만들어요?!”


그의 선택을 존중하려던 건데, 그에게는 내가 악역을 떠넘기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사생활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자취하는 걸 비밀로 했었는데, 그는 내가 일찍 퇴근하려고 멀리 사는 척하는 거라는 소문을 냈다. 갑자기 일요일에 출근하게 돼서 친구의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회사에 왔는데, 이미 그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대표님한테 얼굴도장 찍으러 왔냐”고 했다.


오해를 다 마셔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나만 메말라 갔다. 죽은 물고기들이 자꾸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렇게 1년이 넘도록 외롭게 지내던 12월의 어느 날, 그가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OO님, 저 무시하시는 거예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젯밤에 저한테 자료 보내신 거요. 밤에 메일을 보내는 건 제 감정은 생각하지 않는 행동인 거잖아요. OO님은 절 존중하지 않는다는 거죠? 제가 틀려요? 무슨 할 말 있으면 해 보세요!”


그는 무섭게 쏘아붙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혼나는 1시간 내내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내가 왜 싫은 걸까? 그 이유를 안다고 한들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있긴 한 걸까?


간신히 버텨왔는데 그날로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마음도, 몸도.


처음엔 금방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동네 병원을 전전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병원을 다니며 약을 처방받고, 링거를 맞았는데, 한 달이 넘도록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던 어느 날, 오후 반차를 내고 대학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 싸움이 시작됐다.




Note.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사이트에 가면 내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리스트를 볼 수 있다. 같은 병으로 여러 병원에서 처방을 받았다면, 어떤 성분이 나랑 잘 맞았는지를 확인해 보자. (병원마다 취급하는 약이 다르고, 의사는 다른 병원에서 처방한 내용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완전히 망가지기 3시간 전, 트리는 예뻤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반려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