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베이커리
"반"이라는 말은 태국어로 집이라는 뜻이다.
반 베이커리는 그야말로 빵집이라는 말인데,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 빵집을 소개해 준다.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마침 숙소와도 가까워 조식이 질릴만한 어느 날 방문했다가 홀딱 반해버린 곳이다.
"왜 이제야 여길 왔을까? 좀 더 일찍 올걸"
치앙마이 여행에서 항상 가지고 다녔던 스케치북과 수채화 도구들을 꺼내어 이곳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카페가 크지는 않았지만, 빵이 맛있었고 직원들도 친절했다.
그리고 이곳이 조금 더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주인이나 직원들이 아닌 그곳의 손님들이었다.
이곳은 독특하게도 당골 '외국인 손님들'이 많았는데, 처음 이곳에 들어갔을 때 만난 캐나다 여성인 수잔 이 생각난다. (정년퇴직을 한 나이가 지긋한 분이셨다)
수잔은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환영해주며 마치 직원인 양 이곳은 뭐가 맛있고, 어떻게 먹으면 되는지를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만난 나와 남편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왜 치앙마이에 왔는지, 또 얼마나 머무를 예정인지까지, 주문한 빵과 음료가 나오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속사포처럼 자신의 스토리를 풀어놓았다.
수잔의 아버지는 파일럿이었지만 그녀 나이 1살일 때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그녀도 파일럿이 되고 싶었고 공부를 하다가, 여성운동에 깊은 관심이 생겨 여성운동가로 오랜 시간 일을 했다고 한다. 여성운동을 하면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게 되었고, 그중 치앙마이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가 되었다고 했다. 매년 캐나다의 겨울이 되면 치앙마이에 3개월씩 살다 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잔의 어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었고, 사망 직전에 (유언을 하며 치앙마이에 콘도를 사라며) 유산까지 남겨주셨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는 치앙마이에 와야 할 명분이 더 많이 생겼고, 따뜻한 듯 시원한 치앙마이에서 해마다 겨울을 난다고 했다.
그리고 반 베이커리는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하는 아지트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그녀가 여성 운동하며 만난 사람들, 환경에 대한 얘기들도 해주었고, 우리에겐 과히 충격적이라고 여겨질 만한 이야기들도 해주었는데, 얘기를 듣다 보니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낯선 누군가의 일생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요약해서 들을 수 있다니...
수잔의 얘기를 듣고,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이라는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친숙함이 느껴졌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 이메일을 교환하고 있었다.
수잔은 나의 그림을 좋아해 주었고, 그림 때문에 더 쉽게 대화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우리는 거의 매일매일 반 베이커리에 갔고, 갈 때마다 다른 국적의 외국인들과 얘기를 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온 할아버지는 태국인 여자 친구와 빵을 먹으러 오셨는데 휴가를 위해서 독일에서는 일요일에도 일을 하며 휴가를 모은다고 했다. 그렇게 아껴 모은 휴가로 치앙마이에서 2개월가량을 머무른다고.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사람은 일본 노부부 커플인데, 영어로 말을 하면 일본어로 대답하셨다. 재밌는 건 우리가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데도, 노부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거였다. (100% 알아들은 건 물론 아니고 뉘앙스를 이해하는 정도였겠지만) 할아버지는 한국사람이 일본 카툰을 좋아한다고 했고(일본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셨음), 남편이 그 말을 바로 받아서 자신이 좋아했던 일본 만화 시리즈를 읊었다. 그에 좋아하는 일본 할아버지 할머니들. (귀여우셔라)
반 베이커리는 어느새 여행자들을 이어주는 대화의 장이 되었기에 더 기억에 남는 곳이 되었다.
맛과 향 그리고 스토리가 있는 카페는 흔치 않다.
흔할 수가 없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