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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비 Oct 26. 2022

#12 아무튼 샤워

죄책감을 치유하는 샤워

  서울 여행길, 종로의 오래된 느낌이 묻어 있는 호텔에서 묵었다. 욕실에는 핑크빛이 감도는, 어쩌면 오래된 까닭에 붉은색이 묻어 나온 것 같기도 한 작은 욕조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려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양치를 하며 물을 틀자 따뜻한 수증기가 온몸을 감싸고 물줄기를 맞으며 잠을 깨운다. 이 시간을 붙잡아 두려는 것처럼 물이 흘러가지 않도록 욕조의 배수구멍을 막았다.


  몇 해 전부터 겨울이면 더욱 컨디션이 떨어졌다. 부족한 일조량 때문인지, 산후조리를 잘 못한 탓인지 우울한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오래 묵었던 죄책감 탓이었을까.


  따뜻한 물로 하는 샤워는 체온을 올려 에너지를 주었다. 샤워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도 동작이 느려서 오래 씻는다며 재촉하고, 경제성과 효율성을 따지던 나였다. 살아온 날 만큼 씻었는데 이제야 이 순간을 누린다.  


  답은 샤워였다. 따뜻한 물에 몸을 씻는 것. 천천히. 여유롭게. 씻기 싫은 아이들을 달래며 가끔 고함을 지르고 물줄기가 떨어지기 무섭게 몸을 비벼대는 것이 아닌 온기가 몸에 퍼지는 순간을 감각하는, 샤워.


  내 필명도 ‘따뜻한 비’였다. 온기가 전해 오는. 그런 글을 쓰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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