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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히 Apr 10. 2021

잠시 잊은 부재에 대한 기억


평소와 다른 것 없을 하루를 끝냈다.

집으로 돌아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건조대에 걸린 바싹 마른 수건들을 걷어 왔다. 집안일은 또 왜 이리도 많은지, 아무런 감정과 생각 없이 빠른 손으로 바짝 말라 건조 해진 수건들을 탁 탁 개어 쓰러질 것 같은 피사의 탑처럼 수건들을 쌓아 올릴 때였다.


문득 한 수건의 글귀에서 기계처럼 움직이던 손이 잠시 멈추게 되었다. 난 생각에 잠겨 멍하니 앉아 있다가 에휴 하는 한숨과 함께 그 정적을 깼다. 아마 수건에 적힌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서였을 것이다.


그 글귀에는 한 사람의 생일이 적혀 있었고, 축 환갑이라는 글귀가 적힌 기념 수건이었다. 왜 오늘따라 그 글귀가 눈에 띄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실로 한 땀 한 땀 적힌 그 글귀의 주인공은 우리 할아버지였다.


2000년도. 내가 아주 어린 초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철이 없던 나는 할아버지가 암이라는 무서운 병을 견디며 힘든 시간을 보냈던 그때 철 없이 해맑았다.

할아버지의 수술로 우리 집은 암흑처럼 어두운 무거움이 짙게 잠길 때가 많았다. 철없던 나는 심각한 상황을 모르고 재잘재잘 떠들며 할아버지가 금방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후 몇 달 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생신을 애써 모른 척하고 성대한 환갑잔치를 열게 되었다. 지금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할아버지의 생신보다 조금 이른 달에 환갑잔치를 하게 되었는데 할아버지의 몸이 극도로 나빠져 그의 마지막 생신을 우리와 함께 보내기 위함 이였다.


 없이 철없던 나는 할아버지가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니 그  날은 어느 건강한 사람과 다르지 않아 보였고 이따금씩 한복 저고리에 눈물을 훔치는 엄마나 눈시울이 붉어지는 고모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금 다시 찾아본 할아버지 생신 사진에는 전보다  많이도 수척 해진 모습힘없는 어깨에서 뒤늦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웃고 있는 그얼굴에서 참 많은 감정이 오갔다.


자그마치 20년 전의 일이 되었다. 세월은 빠르게 흘렀고, 할아버지 없이 살진 못하겠다는 할머니도 이제 조금은 괜찮아지신 듯하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불쑥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이 환갑 기념 수건의 이름에서 추억을 떠오르자 마음이 저릿해졌다.


가끔 허허하고 웃던 그 흰 눈썹과 깊은 눈동자를 가진 할아버지가 떠오를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헤어짐이라는 것에 절실한 슬픔을 느낄 때마다  그날의 생신 잔치는 더 절실히 도 마음이 아프다.


언젠간 모두 헤어질 모든 것에 또 다른 후회를 또 남기지 않고 싶다. 우린 언젠간 헤어지지만 추억은 남는다. 그 추억은  자신과 헤어질 그 순간에도 내게 남는다.


우린 오늘을 살며 주변의 모든 이에게 많은 순간을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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